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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21. 2021

구겨졌던 다알리아가 온몸으로 건넨 말

활짝ㅣ'계속'하는모두에게 반드시 찾아올 순간

본업인 방송 일을 유지한 채 꽃을 만지던 시간이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새 꽃이 들어오는 날 어김없이 꽃시장에 들렀던 그 시절 나의 또 다른 이름은 사장님 그리고 선생님이었다. 십수 년 동안 이작가로 불렸고 그때도 어김없이 그리 불렸던 내가 앞치마를 하고 꽃을 다듬고 꽃을 만들고 꽃을 파는 플로리스트의 삶을 동시에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플로리스트로 2년 동안 운영했던 작업실을 내놓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꽃시장에 빛깔 고운 다알리아가 들어왔다. 흔히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 예뻐하던 꽃이었기에 나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냉큼 집어 든 녀석은, 과연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잔뜩 구겨져 있었다. 고백하건대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는 녀석들만 보면 그저 맥을 못 추고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했으니, 지갑은 얇은데 계산기는 영 두드리지 않는 사장이 망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던 것이다.


무튼 그렇게 데려온 다알리아가 다음날 작업실에 나와보니 활짝 펴 있었다. 더할 수 없이 구겨져 있던 녀석이 하룻밤 새 물이 잘 올라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감격스러움은 물론 밤새 힘을 냈을 녀석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혼자 있던 작업실에서 "잘했다 잘했어"를 연발했더랬다.



너도 필 수 있다고. 어제는 잔뜩 구겨져 있었지만 내일은 구겨진 일상이 조금씩 펴질 수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의 내일은 전에 없이 활짝 필 수 있다고. 그러니 속단하지 말자고.

어제는 구겨져 있었지만 오늘은 활짝 핀 다알리아가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던 내게 온몸으로 건넨 그 말은, 역시 잔뜩 구겨져 있던 그때의 나에게도, 세파에 지쳐 여전히 종종 구겨지는 지금의 나에게도 큰 위안이다. 짝 필 그날까지, 마침내 나 역시 활짝 피워낼 그날까지 잊히지 않을 고마운 위안이다.



지금 봐도 뭉클한 그때 그 다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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