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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an 30. 2022

나를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다.

나의 내면의 자존감 뱀파이어

 길을 걷는다. 모든 사람들이 날 흘깃 보며 지나간다. 그들의 수군거림에 나의 모든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향한다. 모두가 날 초라하게 바라보며 비웃는다.   

   

 모두 나의 착각이다.      


 한땐 길을 걸을 때마다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불안장애를 가진 나에게 집 밖은 곧 전쟁터였다. 언제 사람들의 시선에 찔려 무너져버릴지 모르는 나만의 전쟁터. 그래서 길을 걸을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을 꽉 쥔 채 빨리 목적지에 이르기만을 바라며 걷고 또 걸었다.   

  

 길을 지나갈 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긴장하는 습관은 13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친구를 좋아할 나이였던 그때의 나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느껴졌다. 친구가 많길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나에게 인간관계는 풀어낼 방법을 몰라 완성할 수 없는 큐브 같았다.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항상 같이 다닐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였다. 13살의 나는 함께 다니던 같은 반 친구들이 있었는데, 학기가 끝날 때쯤이 되자 무리 내의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처음엔 문제없이 다 같이 잘 놀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나는 그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평소에 장난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외모나 행동을 지적하고 따라 하며 놀리기를 좋아하던 무리 내 한 친구의 타깃이 되어버렸다. 그 친구가 나의 외모를 비하하고 나의 사소한 행동, 습관까지 놀림거리로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날 떠날까 두려워 우습게도 같이 웃으며 넘겼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무리 내 다른 친구들도 나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나에게 이런저런 막말을 하며 이제는 나와 함께 다니기 싫다고 대놓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그들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난 매일 밤마다 울었고 다음 날이 오기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점점 나의 자존감은 낮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보면 비웃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가 아닌 모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길에서조차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며 비웃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선 채 길을 다니기 시작했다.    


 살면서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스스로를 챙기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회상했다. 살아보니 친구는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후회가 몰려왔다. 나를 비웃고 놀림거리로 만드는 친구들에게 단호하게 나의 불쾌한 기분을 표현하고 관계를 멈추는 것이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내고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는데 친구가 전부라고 여겼던 13살의 난 나의 자존심보다 옆에 친구를 두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결국 나를 초라하게 만든 건 자존감 뱀파이어인 그 친구가 아니라 현명하지 못 한 나였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내 옆엔 늘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외롭고 쓸쓸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여러 관계들이 나의 손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간신히 잡더라도 모래처럼 조금씩 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항상 남들과, 그리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미워했다.     


 재수를 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이 확 쪄버렸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어 공허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 시발점인 듯싶다. 그렇게 나는 늦은 시간이어도 배가 조금이라도 고프면 참지 않고 음식을 때려 넣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문에 1년 만에 몸무게가 무려 15kg이나 늘어났다. 없었던 배도 튀어나오고 예전에는 잘 입고 다녔던 바지가 이제는 종아리 위로는 아예 올라가지도 않을 만큼 두툼해진 다리를 가진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나에게 종종 뚱뚱하다며 뭐라 하였고 내가 보기에도 볼품없어진 나의 외모에 자존감도 낮아졌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공부를 잘하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엔 늘 당황하고 피하려 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꿈은 크지만 그에 걸맞은 노력은 하지 않았다. 결국엔 의대는커녕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겨우 내 성적에 맞춰 난생처음 들어보는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인간관계도, 자기 관리도, 학업도 잘 해내지 못 한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들도 이런 나를 보고 한심하다 느끼고 피하려 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정작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는 나에게 내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하였고, 살이 쪄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의 모습에 즐겨하던 유튜브 활동을 살을 빼기 전까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내 말에 한 친구는 살이 쪄도 여전히 예쁘고 분명 살이 찐 나의 모습 또한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하였다. 또 누군가는 큰소리는 떵떵 쳐놓고 결국 목표 대학에 가지 못 해 창피해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다시 도전하면 되고 지금 내가 들어간 학교도 괜찮은 학교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였다.  

    

 결국 나의 자존감 뱀파이어는 나였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또한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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