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글어가는 여름

by 이혜연

모든 것이 꽉 차있는 도시와 달리 시골은 파랗게 뚫린 하늘과 푸르게 넘실대는 들판에서부터 여유가 넘칩니다. 드문드문 집이 있고 사이사이 논과 밭에서는 봄의 설렘과 여름의 뜨거웠던 날을 견디고 이겨낸 과실들이 영글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리산 자락의 사과는 다닥다닥 붙어 빨갛게 익어가고 녹음 속에 물결처럼 철썩이는 벼들 사이 벼이삭이 오동통통 살을 채우고 있습니다. 천도복숭아가 붉게 얼굴을 붉히고, 고추밭의 고추는 주렁주렁 태양을 매달고 여름밭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무척이나 변덕스러웠던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원망하고 한탄하는 대신 자신의 과실들을 살뜰히 챙겨 봄에 꽃이 핀이유와 여름의 뜨거운 기도의 이유를 완성해 낸 모든 것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수시로 휴대폰에 남겨진 폭염 경보와 상관없이 고향에 있는 계곡은 무척이나 시원했습니다. 투명한 계곡물을 유영하는 피라미들과 산 그늘 아래 자리한 물놀이장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남은 여름도 시원했던 오늘의 추억을 양분 삼아 잘 보낼 수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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