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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by 이혜연

어린 시절 걸음마를 떼고 말귀를 알아듣게 되면 수많은 농사일 중에 고사리 손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야 했다. 식구 많은 소작농집은 손 하나가 귀했다. 국민학교에 가서부터는 하교 후 냇가에서 빨래를 빨아 간짓대로 빨랫줄을 하늘 높이 쳐들어 바람이 잘 들게 해서 식구들 옷을 말려두는 게 일이었다.


가을이 되면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널고, 포대에 담는 것도 몸무게가 적은 내 몫이었다. 그리고 마당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것도 가볍고 날쌘 내 몫이었는데 식구가 많은 가난한 집이어도 빈가지만 남겨두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래서 낙엽이 모두 떨어진 초겨울에도 같이 겨울을 나야 하는 새들과 들에 짐승들의 안위가 걱정이었던 마음들이 고스란히 겨울 하늘의 별처럼 빨갛게 걸려있곤 했다. 누가 먹어도. 좋을 잘 익은 감과 들판의 늙은 호박이 추운 계절을 항께 이겨내고자 하는 남겨진 마음들이었던 시절,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어느 때보다 따스했던 지난날들이 가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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