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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ul 06. 2024

홀로 선 바다

홀로 선 바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다. 일정을 미리 세우지 않고 갑자기 갈 수도 있고, 행선지를 마음껏 바꿀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었다. 홀로 간다는 건 가벼운 듯 하지만 상당히 무겁기도 했다. 누군가의 의견을 물어 핑계를 대거나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목포까지 무작정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그날그날 행선지를 정하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리산 둘레길을 무서운지도 모르고 걸어 다녔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혼자 섬으로 들어가 일주를 하고 나오기도 하고 남해 보리암 뒤편 오래된 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색다른 우리나라의 풍경에 놀라기도 했었다.


그렇게 훌훌 돌아다녔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혼자 하는 여행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항상 가족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갔을 때 새벽에 몰래 일어나 산책이라도 갈라치면 귀신같이 아이들이 일어나 함께 나가게 된다.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좋지만 가끔 혼자 훌쩍 떠나보고 싶다. 막상 가보면 가족이 없어 허전하고 심심해서 이제 혼자 여행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도가 잔잔히 몰려들며 백사장을 무심히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바다에 홀로 서 있다 오고 싶다. 까만 어둠을 달려 천년 주목의 눈꽃 위로 퍼지는 눈부신 아침 해를 다시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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