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짓날이 되면 가마솥 가득 팥죽을 만들곤 했다. 마루에 앉아 형제들과 쟁반 가득 새알심을 만들면 엄마가 가져가 휘휘 저으며 간을 하셨다. 시골의 기나긴 겨울밤은 엄마의 팥죽과 호박죽, 그리고 커다란 항아리 가득 얼음 동동 띄워진 동치미와 함께 했었다. 한 솥 가득 끓여 밖에 두면 얼음 동동 뜬 식혜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겨울만 되면 그리운 맛이 되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5년.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팥죽을 끓인다. 어제 불려놓은 팥을 한번 끓여내 떫은맛을 제거하고 다시 푹 끓여 믹서기에 갈고 체에 걸러 끓이는 동안 둘째와 식탁에서 새알심을 만들었다. 둘째 특유의 새살스러움과 애교 말투로 새알심을 만드는지 수다를 떠는지 모를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가 만들어서 빨리 완성됐다며 공치사도 잊지 않는 둘째가 사랑스럽다. 그렇게 한 솥 가득 끓여 이웃과 나누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겨울이 긴 밤을 데려와 잠들어 있었다. 동짓죽 한 그릇씩 먹다 보면 어느새 겨울도 텅 비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