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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May 29. 2024

4. 해결방안이 아니라 그럴싸한 공감.

나이가 들어갑니다.

그럼 다들 말의 무게를 느끼면서 지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입을 닫고, 가만히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타인에게는 쉽습니다.

특히 마음에 없는 대상에게는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걱정되는 마음에, 애정 어린 목소리로, 아주 다양한 이유로

가만히 들어주기보다는 조언과 해결방안을 말해주려고 합니다.

간단한 일상이야기에도 각주가 붙고, 참견이 있습니다.

이 참견은 참 따듯한 관심인데, 그 관심이 속상합니다.

그냥 이런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뿐인데, 하나하나 짚어가는 모습에 속상합니다.

공감을 원했는데, 그렇더라구요.


'나 오늘부터 이걸 시작하려고 해.'

라고 말하면

'어머, 너무 멋진 생각이야, ' 또는 '힘들겠다, 파이팅 해.'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건 이렇게 해봐' 또는 '이건 이렇게 해야 해.' 등등.

단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 내가 고려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 -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저는 이야기할 것이 없어지고, 공감보다는 해결방안책으로 내놓는 이야기들을 다시 듣고만 있다가

반박을 하다 보면, 일상이야기가 아닌 옳고 그름의 이야기로 변질되어 갑니다.

이런 이야기는 참 길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소모되는 거죠.


'너무 멋지다!' 또는 '힘들겠구나, '라는 공감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보니

대화의 길이는 짧아집니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고, 힘을 느낍니다.

무심할 것 같은 보여주기식의 공감과 응원일지라도 긴 말 없이, 짧게 끝내는 말이

나의 일상을 반짝이게 해 줍니다.


저도 그걸 잘 알기에, 공감을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때가 많아서 긴 연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럼 너무 부끄러워서

사과하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입을 닫고,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려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

말하기가 어렵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말보다는 글이 좋고,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을 다듬고, 내 마음을 다듬고, 단단해지는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겠지요.


오늘도 갑자기.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싶고, 문득 이런 일이 있어서 쓰고 싶었던 공간입니다.

그러니까요.

남들에게 말을 하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줘'하지 않는 이상, 이런 불편한 일은 항상 생길 겁니다.

근데 그런 말을 듣고 싶으니- 해봐- 하는 것도 참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불편합니다.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고 싶을 때,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좋아졌지만

요즘에는 그냥 날 좋은 하늘만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기분이 참 오래갑니다.


사람이 이제 힘들 나이인가 봅니다.

나이가 드니, 다른 고집이 생깁니다.

타인을 설득하려는 고집이 아닌, 타인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고집이 생긴 거지요.

그런데, 그건 독심술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의 성격과 천성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의 기분은 언제나 변덕스럽기 때문에 더욱 힘든거지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그냥 일상에서 한마디를 던지면, 많은 반응들이 있었지만, 공감은 잘 없었습니다.

그러면 좀 외로운 날이 되더라고요.

크나큰 사랑과 우려 속에서 오가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듣기에는 힘든 그런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랬습니다.


오늘도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해결방안 말고, 공감. 나 그 맘 잘 알아요- 다 알아요, 라는 공감보단, 잘 모르지만 알것 같아요. 하는

덤덤한 공감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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