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리 삼번지 Jun 01. 2023

백수여도 괜찮아

(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5. 회사로 돌아갈까?)


어느덧 6월이다.


2023년의 반년이 지났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퇴사 이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난 것이다. 백수가 된 이후 겨울과 봄을 보내고, 이제 여름이 다가온다. 그래서, 이제 뭐해먹고 살 거예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100%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확신이란, 수만 가지의 내적 갈등을 겪고 수천 가지 계산을 끝낸 이후 나온 100%의 확률이다.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정말 억울하게도, 나는 아직도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안고 하루에도 수백 번 마음이 변한다.




이 정도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건 아니에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다. 백수가 된 이후, 한동안은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몇 년 간 회사를 다니며 단체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생긴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대학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갑자기 생긴 여유가 고마울 뿐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정말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말 그건 한동안뿐이었다.


돌이켜 보니, 일을 통해 얻는 에너지도 좋았다. 회사가 지겹고 지쳐서 떠났지만, 승진의 뿌듯함과 성과의 보람, 투덜대면서도 으쌰으쌰 했던 동료들과의 시간들은 잊을 수 없다. 평일 간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주말에 혼자만의 시간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로 인해, 오롯이 혼자만의 순간이 소중해진 것이다. 그래서 정말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느끼긴커녕, 혼자가 좋았다.

예를 들어, 가끔 점심시간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퍽 행복했다. 빵을 좋아하는 터라 맛집으로 유명한 베이커리에 방문해 시간을 갖거나, 식사를 재빨리 마치고 근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며 일상의 탈출을 꿈꿨다. 퇴근 이후에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셨다. 가끔은 혼자 영화를 보기도 했다.




백수가 되고 나서야 그리워졌다.


홀로 지내는 것도 좋지만, 일을 하면서 얻었던 즐거움이 그립다. 다시 말해, 회사가 그립다기 보단 사소한 것에 울고 웃던 온기가 그립다. 직장인 시절의 나는 감정적인 컨트롤이 어려워,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었다. 그래서 퇴사에 대한 갈망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스트레스를 공유할 수 있던, 고민의 무게를 함께 지탱해 주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고마울 뿐이다. 종국에는 퇴사를 결심하고 말았지만,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N년을 버티기 어려웠으리라.



백수로 사는 삶은 꽤나 괜찮다.


주변에서 뭐라 말을 얹을 이도 없고, 걱정고민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이다. 이 또한 괜찮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직장인 시절 겪었던 주위의 배려와 공적 성취감을 곱씹고 나니 제법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십 대 시절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그것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나는 지금 그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 언제까지고 백수로 지낼지는 모르지만, 남은 기간 동안의 고민은 이것에 전념할 예정이다.



이 기나긴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길어지는 백수생활을 납득하기 위한 배경설명이기도 하다.

조금 길어지더라도 괜찮다, 당장은 제자리걸음뿐일지라도 괜찮을 거다. 괜찮지 않을 리가 없다.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고민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들은 헛된 시간일리가 없다. 괜한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스스로에게 떳떳해지자. 이 또한 값진 순간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시골에서 살아남는 법? 살아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