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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혜성리 삼번지 Aug 26. 2023

그냥 살기로 했다.

(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20. 그냥)

서른의 나이는 참 모호하다.

사회생활에 능숙해져 겉보기에 이십 때보다는 제법 어른 같다.

하나 둘 겪게 되는 온갖 사람들과 다양한 환경으로 인해 경험치가 쌓인다.

처세술이 늘어간다는 건 나이를 먹었다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가지 상황에도 능수능란해진 서른이지만, 어려운 건 분명히 있다.

그건 바로 "하고 싶으면 해!"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건만, 막상 그 나이가 되니 Just do it! 이 두려워진 거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앞뒤생각 없이 달려들 수가 없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 고민 없이 시작할 수 없다.

비겁한 변명이겠지마는, 수많은 책임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늘어가는 건 새치, 주름, 그리고 책임감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중에서도 하나의 몫을 해내야 하는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늘어간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만의 삶이다. 월급쟁이로 살아가기에도 벅찬 날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평온한 일상이 혹시나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뒤따르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글로 표현하는 게 좋았다. 감정을 전달하고, 그 순간을 기억하고, 생생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글은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 고사리손으로 쓰던 일기로 시작해서, 서른이 된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적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글을 좋아하지만, 업으로 삼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은 아니지만,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글로 돈을 벌 자신이 없었다. 글은 그저 내 취미일 뿐이고, 감히 업으로 삼을 생각조차 못했다.

용기를 뒷전으로 하고,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마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쉽고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작의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작하기까지가 힘들다는 말이리라. 시작하고 나니 별 거 없다. '글을 쓰는 행위'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SNS에 일상의 순간을 사진 찍어 올리는 것 마냥,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찰나의 감정을 풀어내고 있다. 용기를 내어 나의 짧은 글들을 세상에 선보이니, 별 거 아니더라.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퇴사하기까지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결단의 순간에 항상 필요한 건 용기다. 겁쟁이로 삼십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모든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 브런치를 시작하는 데에도 필요했고, N년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는 데에도 필요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더랬다. 용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계기가 중요하다. 그 계기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계기란, '그냥'이었다.

무섭지만, 두렵지만,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심플하게, 가타부타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되는 거다. 그냥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