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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Aug 01. 2022

닭 대신 사람 잡는 복날

급식 노동의 고결함에 대해

  영양사에게 여름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 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존재다. 초복, 중복, 말복이라는 세 번의 복날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인간이 복날 따위를 만들었나 궁금해 인터넷 포털에 검색을 한 적이 있다. 복날은 먼 옛날에 먹고 사는 일이 힘겹던 사람들이 여름철 무더위를 이기고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 생긴 날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못 먹기 보다는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무슨 복날! 초코과자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초코과자의 날을 만들어낸 어느 회사처럼 복날은 식품의 판매를 위한 마케팅 수단 아닌가?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기업체 단체급식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 추구이다. 그렇다면 영양사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식수 예측을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식수 예측을 실제 보다 적게 하면 음식이 모자라 급식소를 방문한 고객을 돌려 보내야 한다. 급식소는 연예인도 줄서서 먹는다는 유명 맛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반대로 식수 예측을 실제 보다 많이 하면 음식이 남아 버려야 된다. 즉, 순이익이 줄어들어 나의 실적이 줄어든다는 말씀. 영양사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의 어느 날에 몇 명의 고객이 와서 준비된 음식을 얼마나 먹을지 대관절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럴때는 역시 정공법. 최근 몇 달간의 식수 데이터 추이와 몇 년간의 복날 식수를 반영해서 예상 식수를 정한다. 혹시나 모를 품절이나 추가 배식에 대비해 5~10% 정도의 물량을 여유있게 주문한다. 급식소에선 보통 복날 특별식을 제공하고, 특별식이 제공되면 식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급식소는 복날 전부터 비상경계태세다. 어마어마한 양의 닭 전처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물류를 통해 입고된 닭은 아침에 영양사가 출근하고 나면 검수(입고된 식품의 수량 및 품질을 확인하는 일)된다. 닭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비해 수분량이 많고 살모넬라라는 세균이 있기 때문에 쉽게 변질된다. 전처리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식중독의 위험이 높아진다. 전처리를 미리 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근을 반납하고 삼계탕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평소 영양사의 업무에 조리작업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복날 만큼은 나도 손발을 걷어 붙인다. 500마리의 닭을 입고되면 조리종사자 4명이서 준비하면 125마리씩 해야하지만, 내가 투입되면 각 100마리씩 준비하면 되니 조리종사자 입장에선 업무량이 20%나 줄어든다.


  급식 노동의 강도는 조리종사자 불만 상승 곡선과 유의미한 값을 갖는다. 여름이면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주방의 열기에 종사자의 마음 불꽃 스파크가 일어나 용암이 폭발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한다. 고된 급식 노동으로 중요한 날(예를 들면 복날, 근로자의날, 명절 특별식 등)을 앞두고 조리종사자가 갑자기 연락두절되어 고생했다는 선배의 조언을 잊지 않기로 한다. 눈치껏 일주일 전부터 조리종사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짖궂으신 분들은 복날에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잘해주냐고 묻기도 한다. 흑흑. 티가 나버렸나요? 죄송합니다.) 


  아침에 약국에 들러 조리종사자들을 위해 뇌물로 준비해 온 피로회복제를 입안에 털어 넣고 작업을 시작한다. 왼손에는 닭의 발목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영화 범죄도시에 나올 법한 긴 칼을 손에 든다. 장갑을 끼고도 느껴지는 물크덩하고 소름끼치는 느낌에 안면근육이 일그러진다. 동물의 근육을 찌른다는 죄책감 따위는 고이 접어 머리 밖에 두어야 한다. (TMI이지만 여러번의 복날을 겪으며 닭고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칼을 닭의 허벅지 중앙에 찔러 넣었다 뺀다. 가위로 닭의 꼬리 부분을 자른다. 닭의 내장이 꺼내진 자리에 불린 찹쌀과 마늘, 대추 등을 넣은 다음 구멍난 허벅지에 반대편 다리를 넣어 다리를 꼬아준다. 차곡차곡 쌓아 냉장고에 넣어 둔다. 고된 몸을 주무르며 퇴근한다. 건물을 벗어나 헤어지기 직전 조리종사자들에게 웃으며 "화이팅!" 애교를 부려본다. '딸 같은 나에게 나쁘게 하진 못 할거야' 생각하는 내가 약은 것 같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드디어 복날 아침이 밝았다. 대량의 삼계탕을 준비하려면 솥이 부족하다. 시차조리를 위해 복날 특식을 위해 누구 하나 말 한 적이 없지만 모두가 평소보다 빠른 출근을 한다. (책임감 엄지척!) 삼계탕과 함께 제공할 다른 메뉴들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복날 식단표에 사람들은 수박 보다 수박화채가 적혀 있으면 더욱 환호하지만, 조리종사자들은 멘붕에 빠진다. 아니, 삼계탕도 끓이고, 사이드 메뉴도 준비하고, 수박화채까지 하라고? 그냥 수박 먹으면 되지. 수박을 언제 잘게 잘라서 화채 맛까지 맞추냐고. 게다가 냉장고 안에 전처리 해놓은 닭이 한가득인데 화채는 어디다 담을거냐고. 때문에 특식날 좀 더 좋은 메뉴로 고객만족을 실현하고 싶은 영양사와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종사자들 사이의 기싸움은 복날 식단표가 나오기 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제발 메뉴 좀 쉽게 짜주세요" 원성을 그냥 넘기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복날은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워 '삼복더위'라는 말도 있는데, 그 더위 아래에서 가마솥에서 몇 시간을 펄펄 끓여낸 음식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급식소 안은 항상 물과 불을 사용하기에 안 그래도 습도가 높은데, 계속되는 가스솥의 화력으로 그야말로 찜통이 된다.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풍량을 세게 조절한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름철 가스솥 앞의 온도는 70도 이상으로 치솟는다.) 게다가 조리종사자들이 착용해야하는 위생복은 화상의 위험을 예방하는 대신 일사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긴팔 위생복 위에 무릎보다 길고 두껍고 무거운 방수 앞치마를 한다. 위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질 경우 안전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TMI. 긴 앞치마는 이동에 불편해서 조리종사자들은 예식장에 입장하는 신부처럼 웨딩드레스를 잡듯이 주방을 걷는다. 나는 가끔 그 모습을 보면 '딴딴따단~' 결혼행진곡을 부르기도 한다.)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이중으로 착용해야하는 손은 어떨까. 고무장화를 오래 신으면 발이 아프기 때문에 착용하는 두꺼운 양말은 또 어떨까.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의 저울은 외부고객보다는 내부고객인 조리종사자들을 위한 메뉴를 작성하는 쪽으로 기운다. 


  야호! 드디어 배식이 끝났다. (조리 후 배식과정의 내용이 없는 이유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없이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칠대로 지쳐 입맛이 없다. 하루종일 맡은 삼계탕 냄새에 닭은 쳐다보기도 싫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으면 저녁 장사를 해낼 수 없기 때문에 정수기의 차가운 물을 떠와 맨밥을 말아 먹는 것으로 밥을 대신하기도 한다. 저녁 장사가 끝나고 나면 손과 두 다리가 후덜거린다. 이쯤되면 닭을 잡는 건지 사람을 잡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모르겠고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조리종사자님과 나는 복날처럼 특별식을 하는 날이면 전례없던 한마음이 되어 도대체 언제 퇴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머릿속 달력을 넘긴다. 내일부터 다같이 그만두고 아무도 밥하지 말자는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하곤 깔깔깔 한바탕 웃어 넘긴다.  


  배식이 끝나면 조리종사자들은 뒷정리를 하고, 나는 식권을 세고 일매출을 보고를 한다. 복날은 보통 식수가 평소의 10~20% 정도 증가한다. 밥 안먹던 사람들도 먹으러 오기 때문이다. 늘어난 식수에 매출이 늘어난 만큼 나의 실적이 늘어나고 본사 소속 직원으로 부터 수고했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건 진짜 수고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조리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해준 사람들 덕분에 내가 빛난다. 내가 이 공을 다 취해도 괜찮은 것일까. 영양사 일을 하기 전에는 연말 시상식에서 스텝들의 이름을 부르는 많은 스타들의 멘트가 식상하고 가식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한 장의 식판 속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플룻, 커다란 드럼 등이 모여 멋진 소리를 내는 것 처럼 조리종사자들의 역할 하나 하나가 모여 하루의 잘 차려진 메뉴가 된다는 것을. 잔반통에 버려진 음식물을 보며 오늘따라 유난히 속상했던건 조리종사자들의 노고과 시간이 버려진 것 같아서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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