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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Sep 01. 2022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되었던 멘트입니다. 김일영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유쾌하게 따라하거나 웃을 수 없었는데, 자꾸만 누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 지금은 누군가가 아니라 망자라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김일영씨는 같은 이유로 "내 이름은 이효리, 거꾸로 읽어도 이효리"와 같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도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습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순이. 김일영씨 어머니의 이름이었습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이순이씨는 지병이 재재발하는 바람에 기러기처럼 훨훨 멀리도 날아 가버렸습니다. 암을 극복하는데 좋은 음식이라던 토마토를 맛있게도 먹던 이순이씨를 기억합니다. 김일영씨는 스위스에 갔을 적 모녀가 함께 여행 온 것을 보고 이순이씨가 생각나 한참을 울었다고 해요. 누군가의 말 대로 하늘의 별이 되었을 이순이씨는 그곳에서 김일영씨를 지켜보고 있을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5년 전 이순이씨는 화장되어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15년전 이순이씨는 딸과 친구에게 남긴 유언대로 화장되지 않고 깊은 땅 속에 묻혔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깝게 여긴 15년 째 별거중이던 남편의 형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의 땅을 허락했거든요. 안타까움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산짐승이 밭을 헤집어 놓는다느니, 식구가 아프고 다친다드니, 큰 집 사람들은 안 좋은 일만 생길 때 마다 산소 탓을 했습니다. 이순이씨의 남편은 그럴 때 마다 기분이 상하고, 기분이 상해서 큰집에 싹싹하지 못하고, 그러면 또 큰집은 이순이씨의 산소를 탓하는 되먹이 기전이 계속되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순이씨의 묘는 친정을 지척에 둔 납골당으로 옮기며 끊어졌습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름이 같아서 두 번 읽어보는 것 처럼 이순이씨는 이름 때문에 장례도 두 번 하게 된걸까요. 이름에 '둘'을 의미하는 동음이의어 '이'가 두 번이나 들어가서 일까요. 조용히 이순이씨의 이름을 읊조리듯 불러 봅니다. 이순이. 이순이.







  음력 7 18, 모처럼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매년 의식을 치르는 정예 멤버(김일영씨, 김일영씨의 배우자, 이순이씨의 모친과 부친, 이순이씨의 여동생) 모두 모였기 때문일거라 짐작해 봅니다. 하늘의 뜻을 정확히   없지만 김일영씨는 따뜻한 공기에서 이순이씨의 마음을 느낀것 같다고 해요.


 매년 이순이씨의 기일이 되면 김일영씨는 외가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순이씨의 유골이 고향으로 옮겨진 후 시작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지요. 이순이씨의 납골당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어느 바닷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김일영씨는 이순이씨의 제사를 준비하는 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바닷가 마을로 나들이를 갑니다. (참고로 김일영씨는 이순이씨의 이장 사실을 이순이씨의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오작교를 통해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일년에 한 번 이순이씨와 이순이씨의 부모님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순이씨 가족들이 매년 의식을 치르는 술상마을은 전어 축제로 유명한 곳입니다. 전어는 생전 이순이씨도 즐겨 먹던 음식 입니다. 마을에 들어서면 이순이씨가 좋아하던 향신 채소 '방아'의 이름을 딴 섬도 있습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보라색 방아꽃은 또 얼마나 예쁜지 꼭 이순이씨를 닮았습니다.) 썰물이 빠지면 방아섬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그 길에는 이순이씨가 좋아하던 동그란 참고동이 많습니다. 아무튼 술상마을은 이순이씨를 추모하기 꽤 적당한 장소인 것 같습니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지만 사실 전어가 가장 맛있는 철은 여름입니다. 여름철 전어는 부드러워 의치를 사용하는 이순이씨의 부모님도 전어회는 세꼬시로 드실 수 있습니다. 틀니도 막을 수 없는 전어의 매력은 무엇있까요? (고래 등장 효과음) 이순이씨의 부친의 말씀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전어는 항개도 버릴 게 없다. 대가리에 깨가 서말이나 들었다." 김일영씨는 매번 미간을 찌푸린 채 전어의 몸에서 대가리를 똑 떼어 멀찌감치 둡니다. 대신 젓가락 끝에 맴도는 긴장을 숨긴채 전어구이를 통째로 들고 밤을 먹어 봅니다. "쌉수리 한기 훨씬 꼬시네" 그제서야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김일영씨, 김일영씨의 배우자, 이순이씨의 여동생은 생각합니다. '이순이씨도 같이 왔으면 참 맛있게 먹었을텐데...' 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의 손을 한 번 잡아 볼 뿐입니다. 납골당에 안치된 사진 속 이순이씨의 미소가 더욱이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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