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계획을 하고 이루지 못한 일이 별로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야겠다 마음먹으면 전 과목 A+를 받았고, 엉덩이가 깨끗한 기린을 보고 싶다 생각하면 얼마 후 아프리카에 갈 수 있었다. 저 사람을 남자친구로 만들겠다 생각하면 쉽게 사귈 수 있었고, 취업난이 심하다던 해의 취직도 늦깎이 임용고시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임신이다. 그동안 딩크였기 때문에 아이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결혼 후 5년쯤 지났을까. 아이가 없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지냈었는데 마음이 점점 변했다. 배우자와의 시간은 만족스러웠지만 그 이상의 행복이 상상되진 않았다. 만약 내가 임신을 하게 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낳아서 잘 키울 거야. 하늘의 뜻이라면 거부할 수 없지. 시간이 지나 마침내 배우자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임신준비 겸 찾아간 병원에서 들은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내가 임신확률이 20%도 되지 않는 다니.
처음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황당한 마음을 감추려고 건조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검사 결과를 전하던 간호사에게 화살을 돌렸다. 어떻게 그렇게 사무적인 태도로 나쁜 소식을 전하냐고 배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같은 소식을 전했으면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나는 불쾌함을 핑계로 일 년 정도 산부인과에 발길을 끊었다. 어차피 임신과 출산은 내 인생에서 먼 단어였다고! 나는 신포도를 삼키며 말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임신 가능한 날짜 계산하는 법 등을 알게 되었다. 가임 여성이 이렇게 자신의 몸에 대해 무지할 수 있다니. 임신한 지인이 준 배란테스트기로 임신가능한 날짜를 확인하고 아무도 검사하지 않는 숙제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에 재밌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일에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지. 에이 그냥 애 없이 살까. 그동안도 나쁘지 않았잖아? 현타가 밀려오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친구가 시험관 시술을 했는데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하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친구가 갑자기 조언을 했다. 너 요즘 옛날처럼 완전 딩크인 거 같지도 않은데 어차피 낳을 거면 빨리 시도해 봐. 나처럼 어영부영 시간 보내다가 골든타임을 다 놓친다고. 안 그러면 좋겠지만 혹시 시술이라도 하게 되면 1년, 1개월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거야.
과연 그런 것인가. 친구랑 나눈 대화 이후 마음이 심란해졌다. 의술이 좋아 50대도 출산이 가능한 시대라지만 그것이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나는 난소 나이도 내 나이보다 12살이나 많지 않은가. 그래,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나중에 후회할 순 없지. 나는 지역에서 가장 잘한다는 난임전문 병원에 전화해 진료 예약을 했다.
내가 방문한 병원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삼둥이를 태어나게 해 준 명의가 있는 곳이다. 일단 방문만 하면 대기가 길어도 당연히 접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임진료가 처음인 사람은 비교적 덜 유명한 선생님께 진료를 봐야 하는 내부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유명한 선생님 진료는 어떻게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시험관(체외수정)이든 인공수정(체내수정)이든 적어도 2번은 실패해야 전과(진료실을 옮김)가 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 진료를 제일 빨리 받을 수 있는 선생님으로 배정을 요청했다.
배정받은 선생님은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인터넷 난임 커뮤니티에서도 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외모도 젊어 보였고 말투도 차가웠다. 하지만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가! 진료만 잘하면 되지. 스스로를 위안하며 각종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받기로 했다. 생리 이틀차에 혈액검사를 통한 호르몬검사를, 생리가 끝난 후에 나팔관조영술을, 배란일 즈음에 질초음파 검사를 통한 난소와 난포검사 등을 받았다.
1년 만에 다시 받은 검사결과는 참담했다. 주치의는 당장 '임신 하이패스'인 시험관 시술을 하자고 했다. 나팔관은 양쪽 모두 뚫려 있으나 난소나이가 띠동갑이나 차이가 나고 선근증도 의심되는 상황이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고. 아니 의사가 말을 왜 이렇게 잘해. 약 파는 것도 아니고 영업을 되게 많이 하네. 나팔관 조영술이 너무 아팠던 나는 더 이상의 시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꿈쩍도 않자 평소 생리통도 엄청 심했지 않았냐고 물었다. 어머나. 무당이야 뭐야. 심한 생리통으로 근무 중 까무러쳐 응급실에 업혀 간 적이 있었던 나는 홀리듯 시술 동의 사인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