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근 Jul 22. 2024

임신유지 분투기

  병원을 옮긴 게 이유일까.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었기 때문일까. 시험관 시술 세 번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축하에 실감이 나거나 생각했던 것처럼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먼저 했던 임신에서도 착상에 성공했던 것뿐이니까. 착상 위치가 자궁이 아니거나, 유지가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나의 임신은 진짜 임신(흔히 생각해 오던)이라 할 수 없었으니까.


  칙칙칙 폭폭폭 쿵쿵쿵. 임신확인 후 3주가 지나 처음으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완두콩보다 작은 아기의 심장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뛰고 있었다. 아기집 주변으로 피고임이 살짝 보였다. 선생님은 피가 모이고 커지면 아기집을 자궁에서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하셨다. 한 번 맞으면 엉덩이에 돌이 들어박힌 것처럼 뭉쳐서 '돌주사'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있는 주사를 맞았다. 말랑한 엉덩이를 잃은 대신 두껍고 탄탄해진 자궁벽을 얻었으니 아기가 잘 버텨주기를 바랐다.


  임신만 하면 지긋지긋한 약물도 끝일줄 알았는데 이놈의 주사와 약은 끝이 없었다. 습관성 유산 검사 결과에 따라 태아를 지키기 위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혈액을 묽게 해서 혈전이 생길 위험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돕는 헤파린주사와 아스피린, NK면역세포가 태아를 외부물질로 판단해서 공격하면 안 되기에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주사, 혈중 노폐물을 줄이기 위한 일반 임산부의 12배에 달하는 고용량 엽산, 갑상선 호르몬보충을 위한 갑상선약, 자궁벽을 두껍게 만드는 돌주사와 프로게스테론 질정제, 기타 많은 알약과 영양제까지. 약물이 많은 날은 주사가 5대, 알약의 개수가 31알인 적도 있었다.


  지겨운 약물과 눕눕(누워있는 처방을 일컫는 은어)의 생활을 끝내고 임신 13주에 난임병원을  졸업했다. 아기집 주변에 생겼던 피고임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이제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것이 태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 누워만 있어 좀이 쑤셨는데 잘됐다 싶었다. 난임병원이 아닌 일반 산부인과로 전원 할 수 있는 서류를 챙겨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요가원에 가거나 5km씩 집 근처 해안도로를 산책하며 매일 운동을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 뱃속의 아이가 먹고 싶은 거야' 하며 열심히 찾아 먹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좌석 시트를 뒤로 젖혀 반쯤 누워서라도 갔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그동안 누워만 있다가 몸을 움직이니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서 잊었나 보다. 내 몸뚱이가 임신유지를 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평일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돌아오는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아바타 2>를 봤고 맛있는 저녁을 사 먹고 집에 왔다. 신인가수 뉴진스의 커버댄스와 밈이 한창 떠들썩했기에 나도 배워보자 싶었다. 거실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틀고 <하입보이> 커버댄스를 열심히 따라 췄다. "여보, 어때? 나 뉴진스 같아? 이게 바로 뉴진스 태교야" 깔깔거리며 웃던 그때 밑에서 따뜻한 액체가 우두두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소변이라기엔 요의를 못 느낄 리가 없고. 질정이라기엔 미끌거리는 느낌이 아니고. 생리는 덩어리가 있어서 생굴을 낳는 것처럼 울컥하고. 게다가 나는 지금 임신 중이고. 냉이면 별 느낌이 없기 마련인데. '우두두'는 뭐지. 불길한 마음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하의를 내리는데 변기에 앉기도 전에 소나기처럼 우두둑 소리를 내며 화장실 바닥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야구공만 하게 휴지를 돌돌 말아 사타구니 사이를 막고 종종걸음으로 병원에 갈 짐을 챙겼다. 조금이라도 하혈을 줄이려고 차량 뒷 자석에 누워서 대학병원 응습실로 이동했다. 응급의들은 분주하게 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재빠르게 산부인과 당직의를 만나볼 수 있게 했다. 그동안 응급실에서 한참이 지나도 진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렸던 것 같은데. 지금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초음파를 보는 당직의의 미간에 주름이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없어졌던 피고임이 다시 생겨서 아기집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이턴의는 레지턴트의를 불렀고, 레지턴트의는 교수님을 불렀다. "3주 뒤에 보자니까 니 왜 벌써 왔니." 교수님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려 하셨다. "별거 아니야. 입원해서 주사 맞으면서 잠시 푹 쉬면 돼. 너무 걱정하지 마."


  임신 14주라 프로게스테론은 계속 써오고 있어서 달리 써볼 방법이 없었다. 임신 22주부터 사용할 수 있는 자궁수축 억제제를 달았다. 자궁수축 억제제는 자궁의 반동수축이 올 수 있기 때문에 5분 이상 떼면 안 된다. 그리고 손떨림, 구역감 등의 부작용은 아주 흔하고 드물긴 하지만 심부전, 폐부종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이 꽤 발생하는 약물이라 관리가 까다로웠다. 매일 수액과 먹는 양, 소변량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제출하고, 일주일에 한 번 심전도, 폐 엑스레이 등 특이사항을 점검했다. 태아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자궁수축검사, 초음파검사도 수시로 했다. 그리고 처방명이 ABR(Absolute Bed Rest, 절대침상안전)이기 때문에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계속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샤워도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씻었고, 검사실에 갈 때에도 보조인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교수님의 '잠시'는 2주가 되고 3주가 되었다가 한 달이 되었다. 지난했던 입원생활에도 한줄기 빛이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 '은유'와 함께하는 글쓰기 모임을 온라인으로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같은 책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써서 제출하고, 서로의 글을 읽고, 함께 사유하는 수업이 있는 화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인실을 쓰고 있어서 집에서 처럼 목소리를 크게 낼 순 없지만 어딘가에 연결된다는 자체에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한 게 많았다. 4일에 한 번씩 팔을 바꿔가며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의 심장이 내 뱃속을 떠나지 않고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아기집 위로 자리 잡은 혈종의 크기가 크긴 하지만 다행히 더 자라진 않았다. 아기가 자라면 혈종은 비교적 작게 느껴질 것이었다. 첫 임신이 잘못되어 난관을 절제하고 입원해 있을 땐 다른 아기의 소리를 듣는 게 힘들어 1인실로 옮겼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아기를 기다리는 입장이니까. 긍정회로를 마구 돌리며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산부인과 병동이라 그런지 다들 보호자가 있는데 주말부부인 나만 보호자가 없었다. 배우자가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매일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시켜 먹기 위해 메뉴를 고르고 주말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병실 구석에서 커튼을 치고 알배추에 싼 해초과메기를 와구와구 씹으면서 다음 주엔 똠양꿍을 먹어야지 다짐하던 순간이란!  


  2주 넘게 지속되던 하혈이 멈추고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퇴원이 허락되었다. 임산부는 보통 3주에 한 번 병원에 가는데 나는 1~2주에 한 번 가야 했다. 이후에도 자궁벽이 여러 번 말썽을 부려 세 번이나 입원 권유를 받았다. "교수님, 저 병원에 있으면 더 아플 거 같아요. '절대침상안정' 그거 집에서 여어어어얼심히 할게요!" 하고는 꽁무니를 뺐다. 나는 집에 와서도 화장실 갈 때와 밥을 해 먹을 때(비교적 손이 안 가서 조리 시간이 30분 이내인 메뉴)를 제외하고는 누워만 있었다. 집에서 거리가 먼 병원에 갈 때에는 차량 뒷좌석에 누워 이동했고, 배탈이 나면 장이 움직이면서 자궁을 건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두문불출 않고 임신 38주가 지나 드디어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여러 번의 임신경험을 통해 보다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임신=출산'이라는 공식이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 임신이나 출산이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경험일리 없다는 사실. 덕분에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아기 없이 혼자 몸조리를 하는 여성을 만났을 때에도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며 말을 조심할 수 있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한 과정은 생각지 못한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는 또 어떤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작가의 이전글 시험관임신 분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