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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Feb 19. 2024

춤에 자유로워지는 시간

마음이 스산할 때, 화가 휘몰아쳐 숨이 가빠질 때 음악을 틀면 좀 누그러진다. 슬슬 화가 흥으로 바뀌면서, 마음의 장르가 바뀐다.


하지만 신은 나에게, 흥은 주셨으나 몸으로 그 흥을 발산하는 몸뚱이는 허락지 않으셨다.


블링블링한 미러볼 조명 속에 자유로운 몸짓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시간.


즐거움도, 욕구불만도, 춤으로 승화해 트렌디하게 표현하는 시간은 내게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음악 장르에 따라 척추를 분절하는 건, 관절을 꺾고 골반을 튕기는 건, 온전히 내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까운 내 청춘을, 몸치로 살게 그대로 둘 순 없어

20대의 어느 날, 백화점 문화센터 방송 댄스반에 등록했다.


하지만 하필 내가 등록한 달의 주제곡은 '싸이'의 '새'였다. 새는 격하게 춤을 추다 양쪽 어깻죽지를 들어 올리며 우울한 비상의 자세로 끝맺었다.


내 꼬인 스텝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뻣뻣했고 갈피를 못 잡았다. 반짝반짝한 조명 속 뇌쇄적인 눈빛으로, 관능적인 춤을 추는 화려한 세뇨리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연습 없이 실전에 뛰어들자 싶어 클럽에 나서보았다. 역시나 늘 도망치거나 질색하기 일쑤였다. 


사이키 조명들 사이로, 철저히 타인들에게 둘러싸인 와중에 뒤에서 내 허리를 감싸는 낯선 손에 놀라던 때.


귓등 너머로 콧바람을 불어대며 속삭이는 끈적끈적한 목소리에 소스라치는 때.


내 엉덩이 뒤로, 몸을 한껏 밀착시키는 누군가에 기겁하는 때만 있었다. 


춤을 즐기기는커녕, 저항 기제만 한껏 발동되어 교육 현장에서의 새였던 나는 클럽에선 불현듯 고슴도치가 되었다.


그런 날들 끝에 나의 클럽 로망은 사라졌다.


처음으로 쭈뼛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건 두바이에서였다. 두바이에선 호텔에서만 술이 허용되어 호텔 클럽에서 회식을 했다.


모두들 생계를 위해, 꿈을 위해, 두바이라는 먼 곳에까지 날아든 열정러들. 필리핀, 이집트, 튀니지, 네팔, 캄보디아,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새들이 두바이 한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꿈을 안고 날아든 새들이었지만 실상 월급날엔 환전소로 한 달음 달려가 고향에 돈을 부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모두에게 호텔 클럽에서의 회식은 지구촌 대축제였다. 돈 걱정 없이, 고향에의 향수를, 가족에의 그리움을, 타지 노동에서 오는 고달픔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었던 유일한 화합의 장.


음악 장르 상관없이 국적 불명의 전통춤들이 다 나왔다. 자유로웠다.


멋쩍어하는 내게 튀니지에서 온 고프란은 수줍어말고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소리쳤다. 필리핀의 조안나는 헐렁이는 내 두 손을 맞잡고 그루브 한 춤을 함께 췄다.


에라 모르겠다. 용기가 생겼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방방 뛰었으며 정체 모를 춤사위를 펼쳤다. 다 같이 떼창을 불렀고 모두가 춤으로, 하나가 되었다. We are the world. We are the one. 


뭉클함과 신남 사이에서, 축배를 들었다. 손 등에 소금을 묻혀 핥은 후 쓰디쓴 데낄라를 털어 넣고 신 레몬 슬라이스를 베어 물었다. 그렇게 데낄라 라운드가 연거푸 돌았다.  우릴 위한 축배를. 나는 춤을 추다 정신을 놓았다.


요즘의 난, 시시때때로 흥을 장착하는 쌍둥이들 사이에서 정체불명의 춤을 춘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들 앞에서 용감해진 것인지, 남의 신경 따위 안 쓰는 40대로 객기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이 똥에 한창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일 때는 '똥 밟았네' 춤을 따라 추고 아이돌 포인트 동작을 짚는다. 학예회용 나팔바지 안무를 따라 하기도 한다.


모두 집에서만, 아무도 안 볼 때 펼치는 춤사위지만, 차 안에서 운전하며 둠칫둠칫하는 정지만, 어쨌든 때때로 춤으로 위안을 받는다. 적당히 춤을 즐기고 있다.


살아보니 마음 상태가 '그냥'일 때, 오롯이 행복할 때가 많았다. 목적이나 의미 없이 그냥인 순간. 그냥 걷고, 그냥 볕의 따사로움을 즐길 때. 그냥 전화도 걸고 때로 그냥 내버려 둘 때.


좋은 음악이 나오면 그냥 나도 같이 춤을 춘다. 적어도 잘 추는 춤이든, 아니든 그들의 몸짓에 아이들이 자유롭고 당당하길 바라면서.


Life is short. and there will always be dirty dishes, so let's dance.


인생은 짧고 설거지 거리는 언제나 있으므로

다 같이 춤을 춥시다.


James Howe


Dance first. Think later.

It's the natural order.


먼저 춤을 춥시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이게 자연스러운 순서랍니다.

Samuel 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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