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희 Oct 01. 2021

프롤로그

엄마는 매일 밤, 짐을 싼다

<스티브 브린>의 동화책, 찰싹! 은 뭐든지 혼자서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 개구리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내민 혀에, 미국 곳곳_ 긴 여행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우리 집에서 흔히 벌어지는, '내가, 내가.' 5세의 '내가 할래' 상황이 개구리의 연못에서도 벌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어쩐지 여행이 길었다. 여느 날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민 혀에, 잠자리에 찰싹! 붙게 되었다. 개구리는 날개를 달았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늪지대를 지나 마을을 지나고, 음악이 울리는 도시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연못에서 폴짝! 몇 번이 전부였던 개구리는 잠자리로, 말로, 풍선에 거쳐 자동차, 오토바이, 비행기, 갈매기까지 타고 곳곳을 누비게 된다. 해가 지고, 멀리멀리 날아가서야 도움을 청한다. 그러다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특유의 엉뚱함으로, 반딧불이를 삼킨 개구리.  이번엔 반짝반짝 빛나는 개구리가 되었다. 오잉! 



찰싹! 스티브 마린




서로 다른 성별, 각자 뚜렷한 취향을 가진 남매 쌍둥이들을 낳은 지 1,417일이 지났다. 그리고 1,300일 즈음을 투덜거림과 반성 속에 보냈다. 난소 기능 저하로 인해 시험관 시술로 애태우던 올챙이 적 간절함을 잊은 엄마. 엄마 개구리는 매일 밤, 아이들 없이 혼자가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온몸이 고단한 가운데, 감기는 눈꺼풀을 잡고 짐가방을 싼다. 그리고 온전히 혼자였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루 종일 두 아이가 '내가, 내가'라며 고집스럽게 울어대는 그 연못을 벗어나, '내가, 내가.'라며 자유롭게 떠돌던 그때로.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에, 불안정한 순간으로의 여행을 그리워하는 청개구리인 셈이다. 


두바이 국경을 넘어 오만까지, 그리스, 독일, 필리핀, 중국, 일본 등으로 엄마의 야간여행이 시작된다. 변변찮은 적금 하나 들어놓지 않았으면서도 돈이 생길 때마다 끊던 비행기 티켓. 얼마라도 아껴본다면서 타던 이탈리아에서의 새벽 기차표. 낯선 이들과 함께 방을 공유하던 아테네, 그 가난하던 여행. 


'똥 밟았네' 아이들의 거침없는 율동을 보면서 엄마는 지난날의 클럽을 회상한다. 그런 날 밤엔 여지없이 필리핀 작은 시골마을 허름한 클럽으로 날아가 춤을 춘다. 누가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하는 듯 수줍어서 잘 추지 못하던 둠칫 둠칫 그때의 춤사위가, 이제는 대담해졌다.   



오만, 니즈와




매일 밤, 길을 잃고 춤을 추고 웃고 떠들던 엄마 개구리는 집으로 돌아와선 곤히 잠든 아이들 사이_비좁은 곳으로 파고든다. 굳이 아이들 틈 사이에서 쪽잠을 잔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쌔근쌔근 숨소리에, 혼자 미소 짓는다. 아이들에게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린다. '그래, 역시 우리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이 최고야.' 홀로 잠든 남편의 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안도감을 느낀다. 깊은 잠에 빠진다. 


아침이 시작되면 웃고 떠들고 춤추는 아이들에게 까불지 마라고, 뛰지 마라고 소리친다. 비 오는 날엔, 진흙물에 튈까 봐 뛰는 아이들을 제지하고 날이 맑은 날엔, 엎어질까 떨어질까 노심초사다. 아이들에게 '내가 무수히 걸었던 낯선 땅에서의 여행을 허락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다 고개를 내젖곤 조용히 속삭인다.


"이불 밖은 위험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