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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02. 2021

프렌치토스트의 주인 찾기

보통 아침 메뉴는 서양식이다.

건강한 한식을 주고 싶어도, 아무도 먹지를 않고 버리는 것이 반이니 언젠가부터 간단한 요거트나 시리얼, 모닝빵이나 프렌치토스트가 아침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 오늘 아침은 프렌치토스트다.

그저께부터 식탁 위를 굴러다니는 식빵 몇 조각이 눈에 거슬리던 차였다.


우유에 달걀, 설탕을 풀어 식빵을 푹 담갔다가 지글지글 프라이팬이 '이제 그만 됐으니, 어서 빵을 올리시오.'라고 외치는 순간 두 조각의 식빵을 올린다.


맨 처음 구운 프렌치토스트는 보통 모양이 별로다. 우윳물을 듬뿍 적시니 맛은 훌륭하지만, 어쩐지 참한 모양이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보통 처음 나온 프렌치토스트는 남편 몫이다.


두 번째 구운 프렌치토스트는 모양도 맛도 썩 괜찮다. 반듯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두 조각의 식빵이 각각 첫째와 둘째 아이의 귀엽고 상큼한 접시 위에 오른다. 포크로 잘 집기 위해 가위로 첫째는 9등분, 둘째는 16등분 조각낸 빵들이 가지런하다.


지금까지 구운 것들이 식을까 나는 얼른 세 사람 몫의 식사를 식탁 위로 올린다. 남편과 첫째는 물, 둘째는 우유. 첫째는 메이플시럽, 둘째는 딸기잼. 각자 식성대로 마실 것까지 어서어서 대령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프렌치토스트를 굽는다. 어떤 날은 우윳물이 많아 세상 퉁퉁하고 푸짐한 프렌치토스트가 되고, 또 어떤 날은 싹싹 긁어도 우윳물이 없어 볼터치 정도만 겨우 마친 그냥 토스트가 된다. 늘 그렇듯 양가의 모양내다 남은 날씬한 식빵 조각이 내 것이다.

나는 때로는 얼른 서서 한 조각의 토스트를 입에 우겨 넣고, 때로는 대충 아무 그릇에나 힘 없이 덜렁거리는 토스트를 벌써 끝나가는 식사 장소로 가져간다. 식사가 끝났는데 어쩌냐고? 그래도 먹는 속도는 내가 제일 빠르다. 씹는 순간 설거지를 준비하는 스피디함이란. 이것은 진정한 주부 10년 차의 위대함이다.






아니다. 첫째가 한창 이유식을 하던 5년여 전의 나는 달랐다. 입이 짧아 이유식만 먹으면 토하던 첫째는 무엇을 해주어도 잘 먹지를 않았다. 병원에서 이맘때면 이--만큼의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보여주었지만, 우리 아이는 요만큼의 이유식도 먹지를 않았다. 첫째가 우유와 분유로 연명하던 그때에도 나는 꾸준히 이유식을 대령했다. 물론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보자-' 이런 단호함은 아니었다. '그냥 제발 한 입만 먹어주세요.' 굽신굽신에 가까웠다.


어느 날, 남은 이유식을 버리던 내게 시어머니가 말했다.

"애들 남은 건 다 먹어도 된다."

"어머, 저는  먹을래요."

며느리한테 아무리 내 아이지만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그때의 나는 멋있고 단호했다.



또 어느 날, 남은 이유식을 버리던 내게 친정엄마가 말했다.

"이건 그냥 네가 먹어라."

"안 먹는다! 엄마!"

딸한테 아무리 내 아이지만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다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그때의 나는 대차고 선명했다.



그리고 지금.

굳이 내 밥을 차리지도 않는다. 어쩌다 아이들이 남긴 것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이상하지?

도대체 몇 년의 세월이 흘러야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나에게는 딱 5년이었다.

분명 아직도 엄마 자신의 음식 또한 예쁘고 상콤하게 꾸며, 단아하고 정갈하게 먹을 줄 아는 엄마들이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대충 남은 밥을 대충 먹고, 허한 마음을 야식으로 때우고, 피곤한 몸을 싱크대 구석 바닥에 앉아 밍밍하고 축축하게 식어가는 커피로 달랜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이상한 습관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젊은 이들이 보면 한심한 학대에 가까운 이런 노릇이 엄마의 모습이라면, 내가 보아도 싫다.


이제는 두 번째 구운 프렌치토스트를 나에게도 주자. 그것도 안 되면, 첫 번째 구운 것이라도 내가 먹자. 적어도 이 집에서 내가 그정도의 위치는 되지 않을까?

충분히 나 자신도. 아이를 대하듯 예쁜 마음으로 사랑해 주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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