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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r 17. 2024

메멘과 모리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

불안했다. 꼬맹이 시절의 용기는 어디로 가고, 성인이 된 뒤부터는 늘 불안했다. 불안의 근본 줄기는 주로 '괜찮을까?'였다. '이렇게 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애를 이렇게 키워도 괜찮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쉬면서 일하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 때는 이 방향이 맞는가 걱정하고, 시키지 않을 때는 이렇게 놀아도 되는가 걱정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무엇을 할 때는 이걸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걱정한다. 이러한 불안은 무한 증식한다. 


어느 날, 친구에게 "나 팔자가 좋아서 이런 걱정을 하는 건가?"라고 물었다가 

"넌 팔자 좋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냐"며 혼이 났다. 



어쩐지 매우 아주 온 힘을 다해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꼭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만 하며 하루를 열흘처럼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닥치는 대로 대충 살면서도 완벽한 인간을 소망하는 나는 무엇 하나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한 채, 시간을 그냥 보낸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메멘과 모리'는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최초 장편 그림책이다. 책 띠에 적혀 있듯이 누나 '메멘'과 동생 '모리'의 이름은 '메멘토모리(Memento mori)!'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메멘토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 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메몬토모리'를 외치게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승리하였으나, 너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겸손하라.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이 단호한 명제 앞에서 작가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한다. 



'내일이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며 매일매일 열심히 보내도 좋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태평하게 보내도 좋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어도 좋고, 나만 아는 이상한 것에 전부를 걸어도 좋아. 

끝까지 포기 말고 노력해도 좋고, 한번 정한 것을 자꾸자꾸 바꿔도 좋아. 

그거면 되지 않을까?  



메멘과 모리(2024), 요시타케 신스케, 김영사



메멘과 모리(2024), 요시타케 신스케, 김영사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 괜찮아.

애써도 좋고, 애쓰지 않아도 좋아.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너. 

그거면 충분해.  

삶은 손에 힘을 가득 주고 실핏줄이 터질 만큼 힘을 주는 괴로운 순간도 마음껏 소리쳐 지금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은 순간도 '블록 쌓기' 같은 놀이처럼 내가 가진 이렇고 저런 모양의 조각으로 쌓아 올려 가는 것. 순간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관객처럼 지켜보고 나아가는 것. 

가만히 앉아서 불안만 키우는 나에게 책이 마법을 건다. 


괜찮아, 충분해.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 

가끔은 예쁘고 매끈한 모양으로, 때로는 괴상하지만 하나뿐인 나만의 모양으로

내가 가진 것들로, 나만이 쌓아 올릴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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