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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r 05. 2021

충격적인 가족 심리 검사 결과

 로맹 가리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잘 알려진 작가다. 그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고,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상을 받아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다.

 그의 두 번째 공쿠르 수상작 <자기 앞의 생>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진실을 너무도 애잔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낸 책이다. 세계 유일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니만큼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엄마 대신 주인공 모모를 키우는 로자 아줌마가 아이가 이상하다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가는 대목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모모에겐 끔찍이도 사랑하는 강아지 쉬페르가 있었다. 모모는 쉬페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돈 많은 어느 여자에게 오백 프랑을 받고  팔아버린다. 열악한 자신의 환경에서는 도무지 쉬페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모는 쉬페르에게 멋진 인생을 선물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쉬페르를 팔고 받은 돈을 하수구에 버린 뒤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운다. 모모가 집에 돌아와 로자 아줌마에게 쉬페르를 오백 프랑에 팔았고 그 돈은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고 말하자 다음날 로자 아줌마는 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어 모모를 데리고 정신과 의사 카츠 선생님을 찾아간다. 로자 아줌마는 카츠 선생님에게 아이가 이상하다, 피검사를 해 달라 등 엄청나게 흥분해서 계속 떠들어댄다.

 “이 아이는 그 개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요. 잘 때도 품고 잘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짓이에요? 개는 팔아버리고 판 돈은 버려버렸으니…… 얘는 다른 애들과 달라요, 선생님. 이 아이의 핏속에 무슨 광기 같은 게 흐르는 게 아닐까요?”

 “안심하세요, 로자 부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카츠 선생님의 말을 들은 모모는 울기 시작한다. 자신 역시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 공공연하게 말해주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전혀 울지 않던 아이가 운다면 정상적인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거라며 카츠 선생님은 아이가 아닌 로자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준다. 불안증을 없애줄 거라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찾았는데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약을 처방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시댁에 산지 얼마 안 되어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이 맞물리면서 우리 가족은 점점 예민해져 갔다. 아이는 짜증과 징징거림이 심해졌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일 때문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만 나무랐던 나를 나는 무참히도 벌주었고 채찍질하며 아이의 마음을 보듬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려 가족 심리 검사를 받아 보았다.  검사를 다 마치고 상담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아이보다도 어머님이 상담을 받아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받아 본 것인데 오히려 내가 문제가 있다고 나오다니.

 상담사의 말을 듣고 신랑이 말했다.

 “거 봐. 네가 문제잖아.”

 상처로 남을 법한 신랑의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치 순간 나 혼자서 그 공간에 분리되어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아득한 어느 곳으로 한없이 떠내려갔다. 아, 내가 문제였구나. 우리 아이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구나. 아이가 불안한 게 아니라 내가 불안했구나. 아이가 우울한 게 아니라 내가 우울했구나. 

 나의 불안과 우울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만 집중한다. 로자 아줌마가 모모의 행동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사실 모모의 행동 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아지를 팔아버린 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고, 하수구에 돈을 버린 건 그렇게도 사랑하던 강아지를 팔아 받은 돈을 차마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로자 아줌마처럼 반응한다. 당장 보이는 행동과 모습을 보며 아이가 문제 있다고 전전긍긍한다. 그런 부모의  모습은 아이를 더욱 외롭고 힘들게 만든다.  아이에게 문제 행동이 나타날 때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아이가 징징거리거나 울 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이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시선은 어땠는지, 그 문제에 대해 아이에게 어떤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었는지, 부모 자신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떤 식으로 해쳐 나갔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 아이의 문제 행동 속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


 아이의 문제행동 원인이 딱 한 가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부모의 양육태도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는다.

 최근 미국 유타주 브리검영대학교 연구진은 엄마가 감정 조절을 잘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뛰어나면 아이가 문제행동을 덜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반대로 엄마가 감정 조절을 잘 못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떨어진다면 아이의 문제행동은 더 많아진다는 말이겠다.


 모모는 카츠 선생님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라는 말에 눈물을 흘린다. 부모는 카츠 선생님과 같은 믿음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어야 한다. 단순히 말로 써가 아니라 눈빛으로 행동으로 태도로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에게 나타나는 문제행동의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내가 문제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개선하는 첫걸음은 바로 부모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정’은 나의 문제점을 직시하게 하고 나아가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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