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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r 09. 2021

피해자 엄마에서 가해자 엄마로

    

 아이에게 1학기 왕따 사건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2학기에는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나의 잘못된 양육태도 영향도 많았겠지만 아이가 1학기 때 상처 받은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는 건지도 몰랐다.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가 친구들을 때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맞은 아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렸다는 충격과 그 엄마에게 사죄해야 하는 상황의 당혹스러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의 문제행동이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기에 자책과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러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굳게 먹게 된 것은  같은 반 엄마들의 모습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어차피 가는 길이기도 했다. 등굣길엔 같은 반 엄마들을 만나기 마련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숙덕거리던 엄마들이 나를 보자 대화를 멈추고 딴청피웠다. 마치 이야기의 주제가 나와 우리 아이였던 걸 숨기는 것처럼. 거기에는 늘 반갑게 인사하던 S엄마도 있었다. 인사하려고 하는 순간 S엄마가 나를 외면했다. 그날 그들이 흘끔거리며 나와 우리 아이에게 던진 그 시선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아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인해 이렇게도 철저히 배척당한다는 사실에 너무도 놀랐다. 그제야 알았다. 세상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아,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구나.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우리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내가 정말 강해져야 하는구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구나.

그때의 경험은   코로나를 앓고  완쾌되어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직장을 그만둔 이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1학년 1년의 시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몇 해 전 앓았던 공황장애보다 더 힘들었다. 공황장애는 나 스스로가 이겨내면 되지만 우리 아이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깊고 깊은 질곡의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언제 들어도 진리다.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은 지나갔고 나도 우리 아이도 지금은 너무도 잘 지낸다. 우리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앞으로 계속 다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동창회에서 C와 나눈 대화와 연관 있다.


 동창 모임에서 대화 끝에 ‘맘충’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C가 자기 아이들과 같이 학원에 다닌다는 한 남자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남자아이 엄마의 일화를 들어보니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 같긴 했다. 한마디로 아이를 위하기보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는 엄마였다. 자신의 모임, 운동을 더 중시한다고 할까. 사실이든 아니든 친구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랬다.

 어느 날 엄마들과 아이들이 카페에 있었다고 한다. 남자아이의 엄마는 모임을 나갔는지, 운동을 갔는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셰이크를 먹고 싶었나 보다. C 옆에 와서는 허공을 보며, “아, 셰이크 먹고 싶다.”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고 한다.     

 “보통은 셰이크가 먹고 싶으면 ‘저 셰이크 먹고 싶어요. 셰이크 사 주세요.’라고 해야 하잖아. 그런데 눈도 안 마주치고 다른 데를 보면서 계속 셰이크 먹고 싶다, 셰이크 먹고 싶다. 이러는 거야.”

 C의 말에 내가 말했다.

 “그럼 너 셰이크 먹고 싶구나. 그럴 땐 아줌마한테 와서 눈 보고 말하는 거야. 저 셰이크 먹고 싶어요. 하고 말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가르쳐 주면 안 돼?”

 그러자 C는 그 아이의 또 다른 일화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해 봐야 소용없는 아이라는 듯이. C는 그 아이의 엄마, 아빠 모두가 이상하다고 했다. 결국 가장 이상한 건 아이라고도 했다. 순간 지난날 나의 힘들었던 시기가 떠오르며 기분이 많이 언짢아졌다. 내가 C에게 말했다.

 “그건 그 아이가 이상하다기 보다 그 아이 평생, 그러니까 구 년 동안 노출된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이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내가 C의 이야기를 수긍하며 들어주지 않자 C는 다른 친구에게 또 다른 일화를 말하며 덧붙였다.

 “그래서 요즘 엄마들 만나면 그 엄마 이야기가 화두로 많이 올라와.”

 C는 화두로 올라온다는 엄마와 단체 대화방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함께 없다고 엄마들과 그 남자아이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 그 사람이 한 행동이나 말이 와전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게 와전된 이야기는 오해일 수 있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사실처럼 되고 그 아이와 엄마는 점점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건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기도 하다.  


 2021년인 지금 어떤 사람이 조선시대 옷을 입고 다니며 조선시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시대에 맞는 옷을 입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2021년 현재, 어떤 상황에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행동이나 언어가 존재한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엄마라면, 아빠라면, 아이라면 이러해야 한다. 분명 그런 게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그렇지 못한 아이가 옆에 있을 때 그저 이상하다는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르쳐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내 아이와 같은 학원을 다니고 어울려 지낸다면 더욱 보듬어 줘야 하는 게 어른이 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피해자 엄마와 가해자 엄마 둘 다를 경험했다. 우리 아이가 한 달 내내 놀림을 당하고 수개월을 아파했지만 단 한 명도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우리 아이를 말로써 때린 건 묵인되었고 우리 아이가 타인을 물리적으로 때린 건 커다란 파동이 되었다. 그 파동은 우리 가족에게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날아왔다. 절대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피해받은 엄마도 아이도 힘든 시기였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와 같은 이들이 세상의 날 선 시선으로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다 포기하지 않도록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 부모의 입장은 어떨지 아이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수렁 속 철저한 배척과 고립이 너무나 힘들었을 때 교감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나를 살렸다.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아이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는 어른이 많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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