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신랑과 단 둘이 외출해 맥주 한잔을 했다. 시댁에 살며 내가 겪는 마음의 고충과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이야기를 하던 중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신랑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엄청난 분노와 절망감에 한없이 눈물이 났다. 밤 열두 시가 다 된 시간에 어두운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걸었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기는 꺼버렸다. 울부짖는 나를 흘끗 쳐다봤을 행인들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골목 어귀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와 칼을 들이댄다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했다. 그때 나는 내 존재를 버렸던 것 같다. 자신을 버리면 두려울 게 전혀 없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다 큰 마트 앞 벤치에 앉았다. 눈물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감정이 수그러들었고 멀리 달아났던 정신이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때 옆 벤치에서 나를 비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느 아저씨가 보였다. 긴장이 되었고 무서웠다.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 옆에 누워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 내가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그 생각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사람이 모든 걸 내려놓을 땐 그 어떤 것도 합리화시키기 마련이란 걸 그때 알았다. 아이는 내가 없다면 처음엔 힘들어할 테지만 곧 적응하고 나아질 것이다. 아이에겐 너무나 인자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고, 아빠도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런 못난 엄마 밑에서 안 좋은 영향을 받고 자라느니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 게 나을 거야.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는 날들을 지냈다. 버티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매일 그랬듯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뒤 나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만사가 귀찮았고 의욕이 없었다. 아이 숙제를 봐줘야 하는데, 놀아 주기도 해야 하는데, 내일 학교 갈 준비도 시켜야 되는데... 실행은 안 하고 머릿속으로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날도 여전히 아이가 옆에서 떼쓰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를 보듬을 기력이 없었다. 떼쓰던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토록 예쁘던 우리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토록 아이에게 다정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리 아이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그러다 문득 알아차렸다. 아이는 내내 무표정한 나를 기쁘게 해 주려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엄마에게 반응을 얻어 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아이의 노력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가 웃으면 함께 웃어주고, 기뻐하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울적하면 위로해주고 잘못하면 가르쳐주고 그런 일련의 반응들이 전혀 없던 거였다.
아이가 나에게 떼쓰고 징징거렸던 것은 미국의 에드워드 박사가 연구한 still face(무표정) 실험 결과와 같은 상황이다. 이 실험에서는 부모의 무표정이 아이와의 상호작용에서 미치는 정서적인 영향을 알 수 있다. 엄마가 아이와 놀이를 할 때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했을 때, 처음에 아이는 애교를 부리거나 조르는 등 자신에게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2분이 지난 후에는 감정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즉, 짜증을 내거나 울거나 도망친다. 우리 아이는 나의 무반응, 무표정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든 울적하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니었다. 아이는 이런 엄마 밑에서 자라면 안 되었다. 그날 나는 내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신경정신과에 가기로 결심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그럴 때 자신의 감정에 압도되어 괴로워할게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는 나를 수영 강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내 팔꿈치가 얼마나 구부려졌는지, 어깨는 어떻게 돌리고 있는지, 발차기는 얼마나 세차게 구르고 있는지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수영강사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내 몸이 움직이는 대로 수영하는 게 아니라 팔꿈치를 구부릴 때마다, 어깨를 돌릴 때마다, 발차기를 할 때마다 스스로 의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내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내 몸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매사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무의식적인 나의 패턴으로 가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괴롭기만 하다. 이것은 등산길과 같다. 내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늘 가던 패턴의 길은 자주 다니던 길이기에 잡초도 없고 편안한 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고통이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 의식적으로 잡초도 뽑고, 삐져나온 나뭇가지도 부러뜨리면서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이 힘들겠지만 그 길 끝에는 분명 평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스피노자의 아포리즘이 떠오른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나에게서한 발 물러나 바라보니 나의 문제가 보였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이다. 감기에 걸려 약을 먹지 않고도 낫는 경우가 있지만 심한 경우는 뇌수막염까지 진행되는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꼭 치료가 필요하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우울증도 마찬가지였다. 나 스스로 치유하고 일어설 수 없는 상태였기에 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문제 해결은 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문제 인식을 할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당신에게 닥친 위기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이제는 그 힘든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해보자. 객관적인 시선, 제삼자의 눈, 수영강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그 순간 우리의 고통은 멈추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으로 어떤 위기를 맞이했을 때 고통스러운 감정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감정이라는 것도 등산길처럼 다듬어진다. 나는 아이의 문제에 있어 늘 가던 죄책감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다듬어가고 있다. 문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우리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