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부모님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까?

by 허경심

‘다그닥 다그닥’ 신랑이 현관 열쇠 구멍을 제대로 못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또 만취해서 들어오는 게 분명하다. 풀풀 풍기는 술 냄새, 초점 안 맞는 눈동자, 혀가 꼬여 제대로 안 되는 발음. 그 끔찍한 것들을 또 참아 내야 한다.

신랑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에는 여지없이 우리 부부가 싸우는 날이다. 조용히 들어와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꼭 나에게 와서 치근덕거린다. 그럼 나는 말이 곱게 나가지 않고 신랑은 그런 나의 반응에 더욱 자극받아 화를 낸다. 결국 큰 소리가 오가고 비난의 말, 경멸의 말이 오간다. 그렇게 대화는 서로 상처주기로 끝나고 신랑은 어느새 코를 골며 잔다. 다음날이 되면 신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정신이 돌아와 있다. 이게 신랑이 종종 만취해 들어오면 일어나는 우리 집 부부싸움 패턴이다.


어느 날 우리 세 가족 모두 지인 가족들과 1박 2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날도 신랑은 술을 마셨다. 나는 아들과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술에 취한 신랑이 우리에게 왔다. 다시 또 우리 집 부부싸움 패턴이 반복되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불을 싸들고 자고 있던 아들을 안아 들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를 가라앉히느라 힘이 들었다.

다음 날 지인이 말했다.

“어제 둘이 다투는 소리 들리던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요.”

너무나 부끄러웠다. 지인의 표정을 보니 험한 말들이 난무했던 어제 우리의 대화를 다 들은 게 분명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하고 생각을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랑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막말을 했다는 것을.

“가까이 오지 마. 죽을 줄 알아!”

이런 말을 듣고도 좋게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온전한 정신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막말을 심지어 술에 취한 사람은 오죽했을까. 신랑이 술에 취한 모습을 보고 도발한 건 언제나 내가 먼저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유난히도 신랑이 취해있는 모습이 싫다. 싫은 정도를 표현하자면 ‘죽을 만큼’이란 단어보다 더 안성맞춤인 단어도 없다. 실제로 그런 신랑을 보며 정말 죽고 싶었을 때도 있었으니까.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신랑의 취한 모습만 보면 격정적으로 화가 날까. 그 해답을 나는 ‘초감정’에서 찾았다. 초감정은 세계적인 가족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이 1996년 처음으로 정의 내린 개념이다. 초감정(Meta-Emotion)이란 감정 뒤에 있는 감정, 감정을 넘어선 감정, 감정에 대한 생각, 태도, 관점, 가치관등을 말한다. 초감정은 감정이 형성되는 유아기의 경험에서부터 형성된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아빠가 맛있는 음식을 사 오고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지낸 사람과 그때마다 크게 부부싸움하는 걸 보며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둘은 나중에 커서 신랑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술에 취해 들어온 신랑을 보고도 화가 안 날 수 있지만 후자는 화가 날 수 있다. 그 후자가 바로 나다.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아빠는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는 모습. 그게 바로 우리 아빠였다. 풀풀 풍기는 술 냄새와 초점 안 맞는 눈동자, 혀가 꼬여 제대로 발음되지 않던 목소리.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끝없이 서로 할퀴던 아빠 엄마의 싸움. 와장창창 그릇이 깨지는 것은 예사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늘 불안에 떨며 지냈다. 그렇게 싫던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어느 순간 나는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초감정의 개념을 알고 생각해보니 신랑이 취한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 뒤에 나의 어린 시절 술에 취한 아빠를 보며 느낀 또 다른 감정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되었던 분노와 원망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형성된 초감정이 신랑이 취한 모습에 반응했던 것이다. 신랑이 어떤 자극을 주기 전에 그저 취한 모습만 보고도 나의 초감정이 작동했던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또 현관 열쇠 구멍을 제대로 못 맞추는 소리. 신랑이 취해서 들어왔다. 나는 또 격정적으로 화가 났다. 우리 집 부부싸움 패턴이 이루어졌고 다음 날 신랑은 아무런 일 없던 듯 자고 있던 나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나에게 손대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신랑이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랑에게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신랑도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제발 술 먹고 들어와서 나한테 말도 시키지 말아 줘. 제발.”

그날 이후로 신랑은 술버릇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술버릇을 고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은 내가 신랑에게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신랑이 술 먹고 들어와서 제발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이제는 신랑이 그러더라도 내가 격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의 초감정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 알게 되고서 변화된 나의 모습이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의 부모님처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부분에서 어느 순간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감정이 작동한 것일 수 있다. 아이가 울면 그 감정 그대로 대하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 내가 울 때 부모님이 보이던 반응에 대한 감정으로 아이를 대하게 된다. 만약 어린 시절 내가 울 때 부모님이 화로 반응했다면 내 아이가 울 때 위로해주거나 얼러주는 게 아니라 똑같이 화로 반응할 수 있다. 그것은 무의식의 반응이라 즉각적이다. 부모님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초감정을 잘 알아두면 좋다. 내가 남들보다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신랑이나 아이에게 보인 감정의 강도가 그들이 한 말이나 행동에 준하는 감정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친 강도로 반응하는 게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좋겠다. 거기엔 분명 억압된 감정이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초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초감정을 알아차리면 부모님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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