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을 벗어나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라

by 허경심

지난날 나는 아들이 왕따를 당한 줄도 모르고 아이만을 나무랐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좀 더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좀 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이가 힘든 일을 겪은 모든 것이 나의 잘못 같았다. 나는 깊은 자책과 죄책감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죄책감을 인디언의 이야기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모진 쇳조각이 있는데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그 쇳조각이 돌아가면서 아프게 한단다. 그 아픔이 바로 죄책감이다. 사람은 죄책감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면 할수록 조각의 날이 무뎌져서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가 아이를 향해 저지른 죄는 그것이 비약적인 생각일지언정 조각의 날은 더욱 날카로워지는 것만 같다. 나는 그 아픔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웠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난 계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랜만에 아이 유치원 동기 엄마를 만났다. 내가 아들이 학교생활에서 겪은 고충을 이야기하자, 지인도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아들에게만 부당한 대우를 해 속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 아파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화가 나고 눈물이 다 나더라고.”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평범해 보이는 지인의 이 한마디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마음 아파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지인의 포커스는 ‘아이’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힘들었을 ‘아이’였다. 나는 어땠는가. 우리 아이가 힘들어했을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고 자책하며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러저러하게 했다면 우리 아이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한없는 후회와 죄의식의 늪에서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니 정작 아이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나의 포커스는 ‘나’였다. 죄책감은 그야말로 ‘나’ 중심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지인처럼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 중심으로 생각했던 나를 깨달으며 죄책감은 이기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건 아니다. 건강한 죄책감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내 감정에만 빠져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문제로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를 바라볼 때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침 등교 전에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며 계속해서 징징댔었다. 엄마는 몇 번이고 고쳐 주었는데 내가 끝끝내 만족을 못하자 엄마가 화를 못 참고 나를 호되게 때린 적이 있다. 그날 퇴근하고 온 엄마는 나를 따로 불러 사과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나 미안해하며 울기까지 했다. 엄마는 그날 일하는 내내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실 엄마가 울면서 나에게 사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함께 울었다. 당시에는 슬펐다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나는 징징대던 내가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나는 참 쓸모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체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식에게 사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나에게 사과한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저에 깔린 엄마의 깊은 죄책감은 아이로 하여금 내가 엄마를 힘들게 했구나 하는 또 다른 죄책감을 갖게 한다.

내가 깊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봐.”

내 아이만큼은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들어야 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가족 심리 상담을 하고 나오는데 상담사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어머님, 다른 어머니들은 어머님처럼 그렇게까지 많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당시에는 상담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과도한 죄책감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독이 된다는 것을. 어린 시절 내가 우리 엄마에게 느꼈던 죄책감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가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에게 생기는 문제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도, 다쳐도, 잘 안 먹어도, 공부를 못해도 엄마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에게 일어난 문제가 엄마로 인한 것이라는 맥락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야말로 기승전‘엄마 잘못’이다. 언젠가 어느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울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해야지 왜 우울해만 하고 있죠?”

과한 죄책감은 우울감을 불러오고 문제 해결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된다. 어쩌면 죄책감은 책임감의 반대말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과한 죄책감에 빠져 문제 해결을 하지는 않고 책임을 모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자책과 죄책감은 이제 그만 떨쳐내자. 내가 아닌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자. 내 감정에 빠져서 정작 힘들어하고 있는 아이를 놓치지 말자. 그래야 아이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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