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껏 후회하고 마음껏 슬퍼하련다

by 허경심

책 쓰기를 하면서 지난날들을 계속 떠올렸다. 내 어린 시절부터 신랑을 만나기까지, 결혼하고 임신, 출산을 하기까지 또 아이를 키우는 과정까지. 내 인생의 모든 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익히 알고 있는 기억들도 있었고,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가슴 아픈 기억들에 더 오래 머물렀다. 책 쓰기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라고 들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백번 이해가 갔다. 나는 나를 마주하며 자주 울었다.

새롭게 떠오른 기억들 중 나의 가슴을 가장 시리게 한 기억이 있다. 시댁에서 이사 준비를 하던 중 아이 책상에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물었다.

“00아, 이 카드 뭐야? 버려도 돼?”

“아, 이 카드. 내가 힘들 때마다 이 몬스터랑 대화했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엄마, 아빠가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혼내기만 할 때 고작 카드에 그려진 몬스터와 대화를 했다니.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인형이든 옷에 그려진 캐릭터든 뭐든 의인화해서 대화해주며 놀아주었는데 그 경험이 아이에게 이렇게 써먹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카드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심지어 그 카드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던 우리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또 마음이 무너진다. 돌이켜보니 당시에는 아이의 입장을 온전히 생각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가슴이 이렇게까지 시리지 않았으니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귀한 인연들을 만났다. 내 인생의 한 획을 그어 주신 최복현 작가님도 알게 되었다. 늘 상처투성이인 과거에 묻혀 허우적대던 나는 돌아가신 최복현 작가님을 통해 ‘지금, 여기, 나’에 집중하는 실존주의를 배웠다. (내 인생의 멘토셨던 최복현 작가님에 대해서는 '깨닫는 삶, 감사한 삶, 행복한 삶'에서 다룰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한다고 해서 미래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행복하려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정말 옳은 말이다. 그런데 아들의 카드가 떠오른 오늘만큼은 과거에 머물고 싶다. 아무리 후회해 봤자 바뀌지 않을 과거이지만 마음껏 후회하고 싶다. 마음껏 슬퍼하고 싶다. 오래도록 나를 나무라고 싶고 원망하고 싶다. 오래도록 그때의 우리 아이를 안쓰러워하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 머릿속에 흔적으로 남기고 싶다. 아이가 가장 힘들 때 아이의 아픔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아픔에만 빠져 있던 나를 미워하고 싶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일 때 송두리째 흔들리며 불안해했던 나를 한없이 꾸짖고 싶다. 훗날 내가 살아가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할 후회까지도 오늘 다 가지고 와서 아파하고 싶다.

'피해자 엄마에서 가해자 엄마로'에서 다룬 이야기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의 이야기들이다. 아이를 키운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부모가 가장 힘든 순간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아이가 아플 때라는 것을. 앞으로 나의 인생에 또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 알 수 없다. 혹여 또 다른 시련이 온다면 그땐 과거의 나처럼 어리석고 못난 내가 아니길 바란다. 오늘로써 내 인생 가장 힘든 시기의 후회와 슬픔은 떨쳐버리려 한다. 과거의 우리 아이와 나 자신을 꼭 안아 주련다. 그리고 함께 고생한 우리 신랑도.

다들 고생했어. 우리 이제 ‘지금’ ‘여기’에서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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