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엄마, 못 참는 아이

by 허경심

어린 시절 강압적이고 화를 잘 내던 부모 밑에서 주눅 들었던 나는 의사표현을 잘 못했었다. 낯선 사람이나 어른들 앞에서는 언제나 말을 잘 못했다. 이런 점은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불편을 주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일이다. 증조할머니 장례식장에 많은 친척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는데 나만 젓가락이 없었다.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엄마한테 말했을 텐데 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때 친척 어른에게 젓가락을 달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젓가락을 달라고 말하자 친척오빠가 말했다.

“야, 너 말할 줄 아는 애였어? 나는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젓가락을 달라고 용기를 낸 일 보다 친척오빠의 말이 나의 기억에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 아이는 나처럼 크지 않길 바랐다. 주눅 들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사람 앞에서건 의사표현을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 일환이 바로 화내지 않는 엄마 되기였다. 아이가 징징대도 떼를 써도 다정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이의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해주려 했고 아이가 말할 때는 만사를 제치고 귀 기울였다. 그때는 그것이 존중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건 아이 위주로 맞춰주어 아이에게 좌절의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는 것이란 걸 몰랐다. 화를 참을수록 아이의 징징대기와 떼쓰기는 심해졌고 오히려 나는 욱 하고 화내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와 나는 그야말로 ‘욱하는 엄마, 못 참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특히 아이가 징징거릴 때마다 감정조절이 잘 안 됐다. 훗날 그것은 나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로 인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엔 몰랐기에 욱 하지 않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집에 아이와 단 둘이 있던 날이었다. 또 참다 참다 징징대는 아이에게 소리쳤다.

“그럴 거면 너, 나가!”

그러자 아이가 울며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신발을 신는 게 아닌가. 나가라고 엄포를 놨더니 정말 나가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또 소리쳤다.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 빨리 안 들어와!”

아이는 울부짖었다.

“차라리 내가 나가 없어지는 게 나아!”

괴로워하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결국 또 욱 해버렸다는 걸 자각했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 그날 이후로 욱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랬더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징징거릴까 봐, 떼쓸까 봐 불안했다. 내가 또 욱해버리고 아이에게 상처만 줄까 봐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불같이 화낸 뒤 울며 사과하는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불안했다. 욱하는 건 줄었지만 욱을 참는 저항감으로 생긴 불안감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아이는 일상이 평안하지 않았고 학교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진행되는 치료였다. 직장에 나가느라 미술치료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선생님과 통화로 그날 우리 아이 태도가 어땠는지, 나의 양육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00이 제대로 사랑하기>라는 제목을 붙인 수첩을 마련했다. 그리고 제목 밑에 이렇게도 써 놓았다. ‘퇴근 30분 전 정독하기’. 그것은 아이를 만나기 전 마음을 다잡고 가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거기에 미술 치료 선생님과의 통화내용을 정리해 적었고, 실천사항도 메모했다. 육아서적에서 참고할 사항들과 이전 실천에서 반성해야 할 점과 잘한 점도 적었다.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은 색연필로 진하게 밑줄 그었다. <00이 제대로 사랑하기>는 나만의 맞춤 육아서적이 되었다.

우리는 더디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좋아졌다.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기쁨의 순간, 환희의 순간. 많은 순간들이 오갔다. <00이 제대로 사랑하기>의 내용을 여기에 몇몇 옮겨 본다.


* 아이에게 앞으로 할 일들을 미리미리 이야기해주기. 갑작스럽게 무엇을 하자고 할 때 거부반응이 심하므로. 그러려면 나 스스로 앞으로 할 일을 먼저 생각해 놓고 계획하는 습관 갖기.


* 아이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을 하자. 왜? 하고 물으며 그 속뜻을 되묻지 말자. 아이도 나에게 똑같이 하니까.

엄마 지금 기분 어때요? -> 괜찮아. 좋아.(O)

왜? 엄마가 화난 거 같아서 물어봐?(X)


* 00 이는 배고프거나 졸릴 때 가장 예민해진다. 배가 너무 고프지 않게 제때 잘 챙겨주기. 너무 늦지 않게 재우기.

* 아이가 부정적 감정을 내비칠 때가 공감해주고 위로해 줄 기회.


* 아이를 혼내기 전에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 해보기.


*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사랑과 허용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에 선을 그어주는 훈육이다. 스스로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게 되었을 때 아이도 더 행복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소파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이가 내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예전 같으면 가만히 좀 있으라며 핀잔을 주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00아, 커피가 뜨거워서 엄마는 네가 다칠까 봐 걱정돼. 조금 멀리 가 있어 줄래?”

아이는 군소리 없이 “네”하면서 소파 끝자락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 혼내기만 하고 말면 아이는 배우지 못한다. 실수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음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 - 미술 선생님 솔루션 : 엄마 기준에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아이가 떼를 쓰면 일단 수그러들 때까지 그래도 기다려 주어라. 그런 뒤 2가지 정도의 제안을 하고 거기에서 타협점을 찾아라. 협박이 아닌 이러이러한 걸 네가 안 하면 엄마도 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 나의 실천

아이와 30분 정도 놀다가 숙제를 하자고 했다. 역시 안 한다고 떼쓴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아이스크림을 먹겠단다. 승낙해주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이게 정말 사과일까>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그랬더니 전날 먹은 꿀 사과가 생각난다면서 사과를 달란다. 사과가 없다니까 사러 가잔다. 아이가 말했다.

“숙제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 이걸 또 들어주면 아이에게 끌려가는 것. 미술 선생님 조언대로 말했다.

“숙제하고 사러 갈 거야.”

그랬더니 자리를 이탈해 울며 떼쓴다. 책상에 앉아 아이가 오길 기다렸다. 안 온다.

“얼른 와. 숙제하고 사과 사러 갈 거야.”

또 엉엉 운다. 기다렸다.

아이가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리나 볼 거예요.”

“엄마는 5분 기다리고 안 오면 엄마 시간 가질 거야.”

“그럼 나는요.”

“너도 네 시간 가지다가 자면 되잖아.”

철저히 감정을 담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책상으로 와 앉았다. 책을 읽어오는 숙제였는데 읽으면서 중간중간 몇 번씩 또 울었다. 그래도 기다려주다가 읽게 했다. 나중에는 화를 내면서 읽었는데 예전 같으면 똑바로 읽으라며 욱 하고 소리쳤을 텐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

“00아, 너무 무서워서 포포가 덜덜 떨겠다. 그래도 대답 잘하네 포포는.”

내가 웃으니 아이도 덩달아 웃는다. 숙제를 다 마치고 기분 좋게 사과를 사 와서 먹었다. 아이는 꿀 사과가 아니라며 한쪽만 먹고 말았지만 어쨌든 오늘 미션 성공이다.


* 아이가 한 주간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잘했다. 최근 자신의 머릿속에 수백 개나 되는 화산을 다 없애버리고 그곳에 새싹을 심었다고 말했다. 나는 기뻐하며 그 새싹이 잘 자라게 하려면 좋은 생각, 좋은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하자 자기도 다 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신기하게 이 말을 하고 난 뒤 아이가 친구들을 때리지 않았다.


* 아이의 떼쓰기가 많이 줄었다. 어제는 외출하고 돌아오는데 계단을 먼저 올라가니까 같이 가자고 성화였다.

“엄마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래.”

“아, 그럼 빨리 올라가세요~”

이건 나도 아이도 큰 발전이라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내가 화장실이 급해도 아이말을 들어주었을 테고 만약 내가 아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또다시 떼를 썼을 것이다. 오늘 아침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이야기했다.

“김장할 때 제가 무얼 도와드리면 돼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징징댈 때 짜증으로 대응하지 않기. 00이 많이 피곤 하구나~ 엄마가 좀 안아줄게. 토닥여주기. 그러려면 나의 컨디션도 잘 조절해야 된다. 잠을 충분히 자고 긍정적인 생각 많이 하기. 아침에 아이가 징징대는 건 엄마에게 의존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당시 미술 선생님이 욱하는 나와 못 참는 우리 아이에게 제시해 준 솔루션을 매일 실천했다. 징징대는 아이에게 ‘쓰~읍’, ‘똑바로 앉아.’, ‘말 예쁘게 못해?’, ‘또 그런다.’등의 자극을 주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옆에서 계속해서 자극을 준다. 그러면서 말을 안 듣는다고 혼내고 화내고 욱한다. 욱하는 엄마, 못 참는 아이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기다려 주기’다. 그 기다림은 아이가 서툰 손짓으로 신발 끈을 묶을 때까지 기다려주기와 같은 ‘행동’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다. ‘감정’에 대한 기다림이다. 여기에서 감정을 읽어준답시고 하기 싫구나, 슬프구나, 화가 났구나 하면 안 된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단호히 말하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을 때까지, 울지 않을 때까지, 즉 감정이 수그러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안정시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오은영 박사는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에서 이렇게 말한다.


육아를 할 때 기다리는 것만 잘해도 욱할 일이 상당히 많이 줄어든다. 기다리는 능력이 극도로 부족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욱이기 때문이다. (중략)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참아 준다’고 생각하면, 순간 욱하게 된다. 참을수록 단단한 공이 되어 튀어나온다. 참아준다고 생각하면 내가 아이에게 굉장한 희생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기다려 주기’가 아니라 ‘참아 준다’로 아이를 대했다는 걸 알았다. 내 아이에게는 나의 부모님이 나를 대한 것처럼 하지 않으려고 참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다려 주기’를 실천해보니 너무나 힘겨웠다. 우리의 뇌는 늘 하던 대로 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같은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때문에 뇌는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기다려 주기’는 내가 생각하는 범위 안에 있는 최선이 아닌 그것을 벗어난 최선이 필요했다.

부모라면 당연히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부모의 욱을 끊어야 한다. 내 아이가 커서 나처럼 욱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괴로운 육아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참아 주기’가 아니라 ‘기다려 주기’로 바꾸자. 낮에 버럭하고 밤에 반성하기는 이제 그만. 욱하는 엄마, 못 참는 아이에서 이제는 탈출하자. 엄마도 아이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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