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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Mar 02. 2021

왕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낸다.

     

 시댁에 살면서 아이를 혼낼 일이 많아졌다. 이전과는 달리 함께 사는 식구가 늘다 보니 싫어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나 예의를 갖춰야 할 일이 더 자주 생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징징대는 아이를 자주 혼냈다. 어느 날엔 시부모님께 너무 버릇없이 굴어 매까지 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싫다고 징징대는 아이를 붙잡고 받아쓰기 공부를 열심히도 시켰다.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를 윽박지르며 꾸역꾸역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 하고 늘 자신은 혼자라며  겉돈다는 것이다. 급기야 아이의 등교거부가 심해져 그제야 아이에게 물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는 한 달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컸던지 자신을 놀린 아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평소 친한 친구들 외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했던 아이였기에 더욱 놀라웠다. 이름을 적어 보니 남자아이들 대부분이었다. 그야말로 단체 따돌림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그렇게 큰 상처를 받는 줄도 모르고, 왕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매번 혼내고 윽박질렀던 내가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버릇없이 군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엄마 자격이 있나 싶었다.

 런 상황을  엄마인 내가 전혀 몰랐다는 자책감이 나를 무너뜨렸다.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추어졌다. 왜 우리 아이가 학부모 참여 수업 때 재채기를 하는 순간 극도로 긴장하고 친구들의 눈치를 봤는지, 왜 학교에 가기 싫어했는지, 왜 나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사실 아이는 나에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짜증이 많이 늘었고 자주 울었다.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잘 써오던 알림장을 자주 못 써왔다.  잠이 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밤에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내가 놓친 결정적인 신호는 우리 아이가 나에게 대놓고 말했었다는 것이다.

 “엄마, 친구들이 나를 자꾸 놀려.”

 “뭐라고 놀리는데?”

 “코딱지라고.”

 아이가 나에게 대놓고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갔다.‘코딱지’라는 단어를 듣고 피식 웃었던 것도 같다. 나의 그런 반응은 아이로 하여금 엄마에게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구나였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할  엄마가 그런 반응을 보였을 때 우리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이의 아픔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때의 내가 미워진다.    

  

 영국의 심리치료사이자 작가 필리파 페리는 <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에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이가 하는 이야기나 그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가 가 아니라 아이가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가이다.’라고 했다. 거기에 예시로 덧붙여 설명한 ‘렌틸콩 수프와 변태 피아노 교사의 상관관계’가 인상적이다.      


 부모는 자녀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여야 한다. 할머니가 끓여준 렌틸콩 수프를 불평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면, 나중에 변태 피아노 교사가 허벅지를 더듬었을 때도 아이는 당신에게 말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을 수 있나 싶지만, 아이가 생각할 때는 두 사건 모두 불쾌했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불쾌했던 경험을 부모에게 이야기했을 때 엄마 아빠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굳이 이야기했다가 무안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이가 친구들이  놀린다고 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게 아니라 아이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가에 집중해 진중하게 들어줬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나였기에 우리 아이는 더 이상 나에게 말할 용기를 못 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아이의 신호를 놓치지 않고 감정에 집중해 대화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엄마, 친구들이 ‘코딱지’라고 놀려.”

 “그래? 세상에나 우리 00이 너무 기분 상했겠다. 친구들이 놀릴 때 기분이 어땠어?”

 “나를 놀리는 친구들이 너무 밉고 싫었어. 속상했어.”

 “친구들이 자주 그랬어?”

 “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에나. 그랬구나.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 00 이를 혼내기만 했구나. 엄마가 못 알아줘서 미안해.”

 “친구들 때려주고 싶어.”

 “그래. 엄마도 만약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런 마음이 들 것 같아. 친구들이 00 이를 놀리는 건 정말 잘못한 일이야. 엄마가 내일 선생님께 우리 00 이가 이렇게 힘들었다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할게. 엄마한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힘든 일 있으면 엄마한테 이렇게 꼭 이야기해줘.”


 평소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었다면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내가 내면 아이 치유를 경험한 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었을 때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해주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내면 아이와 만나다>에서 다룰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낸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거나, 자주 아프거나, 잠을 못 자거나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신호를 보낸다. 무언가 평소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아이와 소통해야 한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를 향해 소통 채널을 열어두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나처럼 모든 신호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며 아파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안심하고 의지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언제나 소통 채널을 열어두면 좋겠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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