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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경심 Feb 28. 2021

1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첫 학부모 상담

 A엄마     

“어제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는데 글쎄 선생님이 우리 아이더러 ADHD 같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몰라. 아니 이렇게 멀쩡한 애를 가지고 무슨 말도 안 되는 ADHD냐고. 그 선생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내가 어제 막 분이 안 풀려서 잠을 다 설쳤다니까.”     


 B엄마     

“어제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우리 아이가 외동인 특징이 너무 두드러진다고 하더라고. 우리 아이가 그런 면이 있긴 해서 같이 동조해 주었지. 집에서도 그런 특징을 보일 때가 있는데 어떨 때 그러는지 세세히 다 말해주었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놀라시는 것 같았어. 너무 오냐오냐 키운다고 생각했나 봐. 그런데 우리 아이가 장점도 참 많은 아이인데 장점은 하나도 말해주시지 않더라고. 그 부분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해 주시는 말이라 생각하고 말았어.”     

 

 학교 상담은 유치원 상담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제 정말 본격적인 학교생활에 접어든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학업은 잘 따라가는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그 어떤 때보다 궁금하고 걱정된다.

 첫 학부모 상담 주간은 신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즈음에 시작된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으로 담임선생님이 30명 안팎의 아이들 하나하나 세심히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학기 초 상담은 선생님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보다 학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도 크다고 한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갔던 학부모 상담. 돌아오는 길에 나의 기분은 처참했다. 그간 유치원에서 늘 들어왔던 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과는 달리 문제점만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분명 선생님이 말한 면들이 우리 아이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해 반응하니 급기야는 내가 우리 아이를 잘 모르고 있던 걸까, 내가 그동안 육아를 잘못하고 있었던 걸까 하고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의 말에 나의 중심은 금세 흐트러졌다.     


 위에 언급한 A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전면 부인한다. B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전면 옹호한다. B엄마가 바로 나이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입장 표명 없이 늘 타인 편에 섰던 나의 관행이 학부모 상담에서도 작용했던 것이다. 나의 무의식에는 만약 내가 상대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으면 상대가 기분이 상할까 봐,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 라는 인식이 깔려 있던 것 같다. 상대 의견이 옳든 그르든 간에 내 입장이나 기분보다 언제나 상대의 기분이 먼저였던 거 같다. 그러한 태도는 나에게도 독이고 깊은 관계로 가는 데 걸림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타인의 의견에 반박할 줄 몰랐던 나는 선생님이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에 오히려 더 보태었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단점을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 동조해 주었다. 아직 우리 아이에 대해 많은 파악을 못 했을 수도 있는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의 좋은 면들을 이야기해주지 못할망정 약점이며 단점을 모조리 이야기한 것이다. 아,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선생님과의 통화에서도 반복되던 이런 나의 태도는 훗날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낙인찍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실험이 떠오른다. ‘로젠탈 효과’는 1968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로젠탈과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이 어느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온 말이다. 연구자들은 선생님에게 무작위로 뽑은 학생들의 명단을 주며 이 아이들은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8개월 뒤 이 아이들은 정말로 성적이 향상되었다.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의 기대감은 선생님의 눈빛, 말투, 행동에서 다 나타났을 것이다. 선생님의 이러한 믿음은 아이들로 하여금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 노력하게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로젠탈의 실험은 선생님이 갖는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었다. 그 '기대감'이란 '선입견'이란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1학년 담임선생님께 우리 아이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고 끊임없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방식으로 소통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아이 문제행동의 모든 원인을 선생님 탓으로만 돌리는 건 절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늘 후회되는 부분이다.            


 앞서 말한 A엄마는 직장 동료의 언니 이야기다. 그녀는 첫 상담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아이가 산만하다, 아무래도 ADHD 같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을까. 그렇다고 그 말을 전면 부인하고 기분만 나빠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인지할 부분은 인지하고 혹여 우리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선생님의 말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면 정작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인식’을 놓칠 수 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은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라 참으로 예민한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그 어떤 대화보다도 중립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이 편에 서거나 너무 선생님 편에 서는 건 좋지 않다. 그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러나 학부모 상담에서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선생님이든 학부모이든 모두의 초점은 같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을 더 잘해 나갈 수 있을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해 나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며 아이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꽤 많다. 누구보다 내 아이를 잘 아는 건 당연히 엄마이기에 혹여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면 주저 말고 이야기하면 좋겠다. 혹은 선생님이 말하는 내가 모르는 아이의 면모를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본격적인 사회생활 시작에서 흔들리지 않는 우리 엄마들이 되면 좋겠다. 엄마 자신을 믿고 아이를 믿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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