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한 남자의 손가락이 나의 똥배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그를 처음 봤다. 지금까지도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그의 이름도 모른다. 그저 주름진 손가락이 내 배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나는 시댁의 한 결혼식이 왔다. 시아버님의 작은아버지의 넷째 자녀의 결혼식이다. 어머님은며느리인 나를 여러 어른들께 소개해주신다.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해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아마 2년 전 나와 남편의 결혼식에 방문하셨을 시아버님 쪽 친척분들 일 것이다. 그중 몇몇은 이내 "애기는?" 하면서 눈으로 힐-끗 내 배를 보는 게 느껴졌다.
시어머님이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중, 나와 남편은 많은 하객 속에 파묻혀 멀뚱히 서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백발을 한 남자분이먼저 다가왔다. 남편에게 잘 지냈냐며 인사를 하니 남편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나도 덩달아 "안녕하세요"라며 몸을 접으며 인사를 했다.
갑자기 그의 손가락이 내 똥배를 정확히 가리켰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내 배를 가리키니 놀랄 수밖에. 그러더니 이내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아니, 임신했네!"
"왜 안 했다고 그걸 숨겨?"
북적이는 하객속에서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지
"아니에요."라는 남편의 대답은 작게 들려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임신했구먼!"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을 주었다.
아니라는 말에도 내가 임신이라고 확정 짓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배에도, 눈에도 힘을 주어 본다. 남편은 "아.. 왜저래.."라고 혼잣말을 한다.
남편은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위로를 할 줄 모른다. 아니,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타인을 위로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위로를 제대로 받아 본 적도, 해본 적도 거의 없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나는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데 있어 그 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남편보다 무척 부족한 점이 있다. 그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이다.나는 나 자신을 위로할 일이 생기면, 위로가 아니라오히려 타박을 한다.
'그래. 15X cm 키에 5X kg 몸무게가 한국인의 잣대에선 정상은 아니겠지.'
'시험관 시술을 하느라어쩐다 하지만 살찐 것도 내 책임이겠지.'
'내가 복부에 주사를 100대 넘게 맞았다는 걸 저 사람은 알 턱이 없잖아.'
'게다가 오늘 내 의상은 내가 선택했으니까 내 잘못이야.'
'어르신들은 결혼하고 2년이 넘도록 임신을 못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시겠지.'
시험관 시술을 위해 대략 1,2주간 자가 피하주사로 호르몬을 복부에 투여한다
시어머님이 내게로 다가오셨다. 나는 참다못해 아까 그 백발의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을 내뱉어 버렸다. 어머니는 그냥 웃으셨다. 그리고 내게 한 명의 여자아이를 가리키면서 물으셨다.
"저 애, 아빠 닮은 것 같아,엄마 닮은 것 같아?"
어머니는 왜 하필 그때 내게 이 질문을 하셨을까.
그 아이가 친척분이 입양한 딸이란 사실을 내가이미 알고 있다는 걸 깜박하신 모양이다."아빠를 쏙 빼닮았어요."라고 대답하니 귓속말로 "쟤 입양한 애거든." 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로 달려가셨다.
"우리 며느리가 OO이가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라며 전하시면서 웃음꽃을피웠다.
나는 그 옆에서 가짜 웃음을 하고 있었다.입양제도에 반대하는 건 결사코아니다. 또 그 아이는 내 눈에 정말 아빠를 닮아 보였다.
내 웃음이 어색한 가짜였던 이유는,
누구에겐 '이미 지나간 일', 누구에겐 '그냥 인사 정도 되는 말'이지만, 나에겐 '상처'인 그 일과 그 말에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라도, 어머니께라도,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라도. 누구에게라도 위로를 받고 싶었다.
모든 하객들은 식장으로 입장해 달라는 안내가 들려왔다. 수백 명의 하객 속에서 나는 지독히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