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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Apr 01. 2024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 줄기는 내려지겠지

2022.2.4. 금요일

새들의 나라 환상곡 (2023)

산책을 하다가 멈춰 선다. 다시 걸음을 떼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말하고, 웃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그 장면의 나열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도처에 도사리는 거대한 존재감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나?

아니면 모두가 부푼 풍선 같은 외로움을 이고 지고도 나아가나?

난 목소리를 잃고, 걸음을 잃고, 갈비뼈 사이사이의 숨과 날갯죽지 밑 의지를 잃고, 돌아갈 고향도 나아갈 방향도 잃은 채,

마침내 완전히 지워진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는데 되잊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사람은 죽어서도 아름답겠지만, 관에 누여 꽃으로 장식한 그 어여쁜 몸을 응시하고 만지는 이들은 살면서 처음으로 (혹은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열 번째로) '생기 없다'는 말의 의미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겠지.

그 창백한 정갈함이, 시린 적막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잊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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