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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Jun 28. 2023

잘생김 만두

모처럼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교통 캠페인을 했다. 학부모회 주최로 하는 행사라 봉사하러 오신 학부모님들은 8시 전부터 모여서 피켓을 들고, 피카츄 복장을 하고, 어깨띠를 두르고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 모두 웃어요.’

  ‘교통 규칙을 잘 지켜요’

  ‘핸드폰을 보지 않고 등교해요’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담임선생님과 독서 챌린지를 하는 6학년들이다. 자발적으로 아침독서활동을 66일 동안 꾸준히 해서 독서 습관을 기르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66일의 반복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고학년답게 교문 앞에 서 있는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을 보고도 말없이 고개만 까닥하고 교문 앞을 통과한다. 피카츄 복장을 한 어머니가 다가가서 아는 척을 해도 힐끔거리며 후다닥 교실로 뛰어간다. 

     

8시 30분이 지나자 저학년과 유치원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교문 앞은 붐비고 피카츄는 바빠졌다. 아이들은 교문 앞에서 피카츄를 보자 달려가서 안기고, 빙 둘러서 서서 멈춰 서서는 반가워한다. 툭툭 건드리고, 악수를 하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눈길을 못 받던 피카츄 인형 탈을 쓴 학부모들은 그제야 손을 흔들고 사진 찍으라고 브이 자를 하며 기뻐했다. 아침 일찍 식사도 못 하고, 자기 자녀들 등교 준비도 못 챙겼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서둘러 온 보람이 있다는 표정이다.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하늘만큼 맑고 쾌청한 기분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교문에 들어선다. 그러다가 교문에 쭉 늘어선 학부모들을 보고는 아이의 눈이 커지고, 입은 벌어지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긴 걸 직감하듯 후다닥 달려온다. 캠페인을 하는 어머니들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피카츄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제자리에서 통통 뛰기도 한다. 온몸으로 기뻐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서 보기만 해도 비타민을 먹은 듯 상큼하다.  

    

한 아이가 땅을 내려다보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책가방이 무거워서 인지,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이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아이는 교문 앞에 일렬로 쭉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듯 쓱 지나쳐 안으로 들어온다. 피카츄 인형을 한 학부모가 장난치듯 그 아이 앞을 가로막고 큰 몸동작을 하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여전히 별 반응 없이 지나가자 피카츄는 "우리 모두 웃어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한 번쯤은 아는 척을 하거나, 살짝 돌아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 아이는 그냥 무표정하게 지나가 버렸는데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어린 학생이라고 다 매일 기쁘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사람이 다 그렇듯 어떤 날은 기분이 하늘만큼 좋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땅만큼 우울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마다 차이가 날 수도 있고, 각자의 기질과 환경으로 인해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금방 울 것 같은 그 아이가 혹시 아침에 혼이 나고 왔을지, 오다가 누구랑 싸웠을지, 아니면 평소에도 그렇게 기본이 그런 표정일지가 궁금해서 계속 바라보는데.......  

느릿느릿 걷던 그 아이가 갑자기 현관 쪽으로 막 달려갔다.  '누굴 보고 저렇게 달려가는 거지?'

 “어, 만두야 지금 오네.”

담임선생님이었다. 현관 앞에서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별명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만나자, 금방 울 것 같이 어둡던 표정이 햇빛이 비치듯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그 아이는 선생님 앞으로 바싹 다가가며 하며 인사를 했다.

“아까 자두가 너 찾던데.”

만두의 친한 친구가 자두인가 보다.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는 "그래요?" 하며 두리번거렸다.


선생님은 만두를 보며 활짝 웃으며 다시 한마디 했다.

  “잘생김, 어쩔 거야. 이렇게 잘 생겨서?”

  선생님은 교문에서 걸어올 때 어두운 표정을 봤는지 만두 얼굴을 들여다보며 짓궂게 말했다.

 “잘생김이 뭐예요. 싫다니까요.”

만두는 선생님께 투정을 부리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럼 잘생김 만두라고 할까?"

선생님의 말에 그 아이는 일부러 자기 어깨를 선생님에게 부딪쳤다. 그러면서 울 것 같던 표정은 사라지고 선생님과 뭐라고 속닥거리며 실실 웃었다.

 

선생님의 말은 아이의 표정을 바꾸어 놓았다. 피카츄 인형도 웃게 하지 못했던 걸 담임 선생님은 말 한마디로 웃게 만들어 주었다. 선생님은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문 앞에서 눈물이 뚝 뚝 흐를 것 같던 잘생김 만두가 현관 앞에서 선생님을 만나고는 싱글벙글 웃었다. 누군가 자기를 기다려 주고 사랑해 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친구나, 선생님이 있을 때 학교는 행복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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