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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Jun 19. 2023

태우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발령받아 처음 6학년을 맡았을 때 한글을 못 읽는 아이, 태우를 만났다.

태우는 말도 잘했고, 어디 한 군데 이상한 구석이 없는 아주 괜찮은 아이였다. 어떻게 이런 멀쩡한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모를 수 있을까 싶어 나는 담임교사로 제대로 할 일을 찾았다며 태우가 졸업하기 전에 한글을 줄줄 읽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태우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학교에 왔고 마음도 순순해서 내가 따로 공부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뒤, 나는 태우와 저학년 교과서로 공부했다. 중간 키였지만 앞자리로 옮겨 앉은 태우에게 나는 자음과 모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태우도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공부라 부담이 없었는지, 혼자 하는 공부라 그랬는지 열심히 했다. 받침 없는 글자, ‘우리나라’를 배울 때는 10칸 공책에 소리 내어 읽으면서 쓰라고 했다.      


태우는

처음 몇 번은 큰 소리로 읽으면서 쓰더니

조금 있으니 속으로 중얼거리며 쓰더니

조금 더 있으니 그냥 쓰기만 했다.

        

10칸 공책 한쪽을 다 썼길래 나는 태우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그냥 ‘우리나라’를 쓰기만 하던 태우는 흠칫 놀라며 읽지 못했다. 그러더니 머리를 긁적거리고, 뭐가 떠오르지 않는지 소리는 안 내고 입만 들썩거렸다. 그러고는 겨우 생각났다는 듯이 자기가 쓴 글자를 한 글자씩 짚으면서 천천히 읽었다.          

국          


아, 태우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받침 많고 훨씬 어려운 글자가 '대한민국'인데 왜 태우는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으로 읽었을까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때 나는 2년 차 초임 교사라 열심히만 가르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당시는 '완전 학습’이 유행하는 때라 ‘완전 학습’이라는 문제집과 전과가 있을 정도였다.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이 배울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교육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 시간에도 짬짬이 가르치고 공부 끝나고도 개별학습으로 가르쳤고, 태우도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배웠다. 그런데 태우의 한글 능력은 너무 더디게 나아지고, 그마저도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면 배운 것도 다시 잊어버렸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완전 학습은 100%가 아니라 수업받은 학생의 약 95%가 학습 과정을 90% 정도 학습한다는 것을. 개인차가 존재하고 약 5% 정도의 학생은 학습을 이해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5%에 태우가 포함되지 않기를 바라며 좀 더 열심을 내 보자며 태우를 격려하며 계속 공부를 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건 태우가 학교에 남아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거였다. 공부하다가도 내가 쓰레기를 줍고 교실을 정리하면 후다닥 와서 같이 하고, 내가 교실 화분에 물을 주면 자기도 따라서 물을 주었다. 솔직히 공부하는 것보다 그런 걸 할 때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2학기 실과 시간에 태극기 함을 만드는 활동이었다. 나뭇조각을 직접 사포질 하고 망치로 못을 박아 나무상자를 만드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처음 해 보는 거라 어려워했다. 어떤 아이들은 나뭇조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어떤 아이들은 못을 박는 것이 겁이 나서 망치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우는 달랐다. 사포질을 가볍게 쓱쓱 하고 못도 얼마나 정확하게 박는지 교사인 내가 보고 배워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은 “야, 태우야 나도 좀 도와줘.” 여기저기서 태우를 불렀고, 태우는 시범을 보이며 친구들을 도와줬다. 태우가 완성한 국기함은 본보기로 보여 줄 정도로 아주 말끔하고 단단했다.         

그날 태우는 만들기와 자동차를 좋아하고, 자기 꿈은 카센터 사장님이라고 말해 주었다. 여전히 한글을 떠듬거리며 읽지만, 국기함을 뚝딱 만들어 내는 태우를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6학년을 마칠 즈음 태우는 우리나라는 읽었지만, 겹받침이나 어려운 낱말은 줄줄 읽지 못했다. 나는 그런 태우를 중학교에 보내면서 ‘열심히 해도 어쩔 수 없이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통감하며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다음 해 나는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첫날, 새로운 아이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만났다. 6학년을 맡다가 3학년으로 내려오니 반 아이들이 유난히 작고 귀여워 보였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다가 어떤 아이와 눈이 딱 마주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쪽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아이가 꼭 태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자기소개를 하며 정우라고 했고, 나는 “혹시 형이 있냐?”라고 물었더니 히죽 웃으면서 “태우”라고 말했다. 정우는 내가 태우 형 담임이었던 걸 알고 있었다.  

        

국어 시간, 나는 설마설마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교과서를 정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나, 이럴 수가!’ 첫 글자부터 떠듬거리며 읽는 정우. 나는 허둥대며 정우 옆에 가서 못 읽는 단어를 작게 불러주었다. 반 아이들 모두 한 문장씩 읽었는데 정우는 한참 걸려서 겨우 한 문장을 읽었다.       

정우도 형처럼 아직 한글을 다 못 깨치고 3학년이 된 거였다. 태우를 졸업시키며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던 내 마음은 정우로 인해 다시 무거워졌다.       


나는 정우와 다시 한글 공부를 했다. 그나마 태우를 가르친 뒤라 그런지 조금은 여유 있게 살필 수 있었다.

‘정우가 알아듣는 건가? 아직도 이걸 모르는 건가?’

마음을 비우고 정우 입장에서 생각하고 ‘ 오늘 모르면 내일은 알겠지.’했다. 태우를 만난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아니면 형보다 어린 3학년이라 그런지 정우가  형 태우보다 훨씬 더 나았다. 적어도 정우의 우리나라는‘우리나라’였다. 대한민국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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