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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ug 02. 2023

엄마는 밀당의 고수

연일 폭염주의보가 뜨는 7월 말,

혼자 지내는 여든네 살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냉방기가 작동을 안 해. 전원을 눌러도 안 켜지고

지난번에 잘 됐었는데 왜 그러죠


냉방기 없어도 괜찮아. 선풍기만 있어도 시원해.

오지 마.

날씨가 엄청나게 더운데.


하긴 요즘 지구가 끓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8월 15일만 지나면 괜찮아. 안 와도 돼.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아직 8월 시작도 안 했는데.


옛날에는 부채로도 견뎠는데. 오지 마.

선풍기만 있어도 괜찮아.

냉방기 필요 없나 봐요.


아니, 왜? 고장 나서 못 쓰는 건데

지금 못 쓰면 일 년 내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가? 그럼 한번 봐주던지


체감 온도 35도가 넘는 한낮에 자동차로 50분을 달려 엄마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문이란 문은 꽁꽁 닫고 선풍기만 돌리고 있었다. 더운 바람이 들어와서 점심 먹고는 문을 닫았단다.

옥수수까지 찌는 중이라 엄마 집은 화덕 안같이 후끈거렸다.


안방에 있는 냉방기 코드를 빼서 다시 꼬옥 눌렀더니 작동이 되었다.


아, 그렇게 전화하면서 엄마에게

콘센트를 다시 꽂으라고

다시 뺏다가 꽂아보라고

열 번은 말했건만

소용없는 얘기였다.


숨이 턱 막히던 집안이 냉방기를 켜자마자 시원해졌다.

한여름 열기를 선풍기로 버티고 있던 엄마는 입이 함박 벌어졌다.

시원해진 방 안에서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에 고이 싼 면봉을 꺼내 귀를 후비더니 정성껏 손수건에 다시 싼다.


뭐해요?

한 번 더 써야지.

쓴 걸 또?


당연하지.

아~~악!

집에 갈래. 아, 정말


지금 더운데.

냉방기 나오니까 좀 더 있다 가!


엄마는 밀당의 고수다. 장난꾸러기다.

나를 갖고 놀고 있다.


냉방기 고치러 오지도 말라더니

고쳐서 시원하니까 집에도 못 가게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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