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이들이 불쑥 내미는 선물을 받는다. 선물이란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고, 이 고마움은 주는 사람의 입장이라 선생님은 아무 준비 없이 다양한 선물을 받게 된다.
노란 포스트잇에 쓴 쪽지, 편지 봉투에 넣은 편지글(주로 스승의 날 즈음), 교과서 붙임딱지에 쓴 메모, 이런 선물을 받을 때 아주 좋다. 나는 MBTI 중 감동 잘하는 ‘F’ 유형이라 긴 글은 긴 글대로,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오타가 많은 글은 그것대로 좋다. 달달한 차 열 잔을 마신 것처럼 따뜻해진다. 글 하나, 메모 하나에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
반면 어떤 선물은 고구마 열 개 먹은 것처럼 부담스럽다. ‘플라스틱 반지나 팔찌, 브로치, 멈춘 시계, 다 쓴 볼펜, 도금이 벗겨진 귀걸이나 반지’ 등이다. 아이들이 귀중품으로 여기는 이런 선물은 가급적 사양한다. 여기에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해서 먼저 고마운 표현을 많이 해서 선물을 준 아이가 거절당했다는 걸 모르게 해야 한다.
“어머나, 예쁘네. 멋진데.”
이렇게 스무 번쯤 고마움과 감사를 표현하며 직접 껴보거나(반지나 팔찌), 만져보다가(시계, 볼펜등)
“와, 너도 한번 해봐. 나보다 네가 더 잘 어울리는데 네가 하는 게 좋겠다.”
하며 슬쩍 아이 쪽으로 내민다. 이럴 때 아이가 “아, 그래요?” 하면서 되돌려 받는 건 무척 긍정적인 신호다.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걸,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드린 선물이란 뜻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의 고마움이 선생님께 충분히 전달되었고, 선생님도 기쁘게 받아들여 줘서 선물의 효력이 발생했다. 선물을 주고 되돌려 받음으로 아이는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더욱 친근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선물로 ‘준거’니까 절대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아이도 있다. 아무리 알아듣게 몇 번을 말해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이건 ‘선생님 거’라면서. 되돌려 받지 않을뿐더러 확인하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내가 준 반지 꼈어요?”
아이는 선생님의 손가락을 확인하고 없으면 어디에 있냐, 언제 할 거냐, 잘 간직하고 있냐를 묻는다. 이런 아이들의 선물은 가능한 되돌려 주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규성이는 빈손으로 학교에 오는 법이 없다. 등교하면서 학교 화단에 들러 풀을 뜯어오거나, 운동장에 있는 특이한 돌을 주워 오기도 한다. 그날은 ‘강아지풀’을 갖고 와서 ‘선생님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몇 번 사양했지만 통하지 않는 규성이는 다음날에는 ‘어제 드린 선물’ 잘 키우고 있냐고 묻는다. ‘뭐였더라?’ 떠올리느라 빨리 대답을 못하자 규성이는 성큼성큼 내 책상 주변을 돌더니 볼펜 통에 꽂혀 있는 강아지풀을 가리킨다. (버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여기 있네요. 잘 자라고 있어요.”
“좀 시든 거 같은데?”
“선생님이 물을 좀 줘야지요.”
자기 혼자 묻고 대답하는 규성이를 보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 이건 물을 줘도 자랄 수 없다고 말해도 규성이는 미덥지 않은 눈치다.
다음날에는 조금 작은 강아지풀, 그다음 날은 토끼풀, 그다음 날은 들꽃 한 송이를 조그만 손안에 숨겨다가 내밀었다.
“선생님, 제가 준 선물 잘 기르고 있죠?”
나는 시들시들 말라가는 강아지풀, 토끼풀을 규성이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선생님, 동생이 생긴대요.”
규성이는 선물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언제?”
외동인 규성에게 동생이 생긴다니 축하를 해 주며 물었다.
“겨울에 만날 수 있대요. 엄마 배 속에서 자라고 있대요.”
“와, 정말 좋겠구나. 겨울에 규성이는 큰 선물을 받겠네.”
“동생이 태어나면 제가 형이니까 더 의젓해야겠지요?”
“흠… (평소 규성이는 의젓한 편이 아닌데.)”
“말썽도 부리면 안 되고, 부모님이랑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하지요?”
“흠… (누가 이런 말을 자꾸 했나 보네.)”
나는 규성이의 눈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걸 바라보았다. 동생이 태어나면 선물을 받는 것처럼 기쁘겠다고 축하해 준 게 잘한 건가 싶었다.
“동생 생기는 거 싫어요.” 어이쿠, 규성이의 말에 나는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다. 규성이도 처음에는 동생이 생기는게 선물같이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동생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형이니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하는 주위 어른들의 말이 아주 부담스러웠나 보다. 어쩌면 규성이에게 동생이란 사양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규성이는 겨울이 되기까지 자꾸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노란 은행잎, 단풍잎, 바닥에 떨어진 빨간 열매를 들고 와서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내 책상 위에는 규성이에게 받은 선물들이 날짜순으로 주르륵 있었다. 언제 불시 점검을 할지 몰라 볼펜 통에 꽂혀 있거나, 교탁 유리판 밑에서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2학년이 올라가기 전 규성이는 기다리던 동생을 만났다.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맨날 맨날 잠만 잔다고 했다. 남동생이 자라면 자기가 축구도 알려 줄 거라면서 “내가 형이니까”를 열 번을 말하는데 여전히 내 눈에는 그런 규성이가 어린 꼬마로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