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내 첫 월급은 35만 원이었다. 월급을 받아서 교회 헌금, 부모님 용돈, 적금, 사촌 언니에게 생활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쥐꼬리 같았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번 돈이라 뿌듯하고 귀했다. 게다가 그때는 봉투로 받아서 월급날이 기다려지고, 기분도 최고였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흘러 다달이 받는 월급이 당연해지고, 봉투 대신 통장으로 들어오면서 월급날인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요즘은 다시 월급날이 기다려진다.
감사하고 고맙다.
아직 학교에 근무하는 게 감사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게 감사하고
아이들 곁에서 오래오래 머물 수 있어서 고맙다.
내 동기들 절반 이상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도 몇 년 안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에서도 썼듯이
내가 잘하는 건 아이들 곁에 있는 거다.
36년 동안 아이들과 학교에 함께 있으면서 나도 아이들처럼 많이 배우며 성장했다.
초임 때는 공부 잘 가르치는 열정적인 교사가 되고 싶었다.
숙제 안 해오거나 모르는 게 있는 학생은 남겨서라도 지도했다. 엄하게 하느라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니 아이들 하나하나가 소중해 보였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가정에서 얼마나 귀한 아들딸인지를 알게 됐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36년이 지난 지금은 선생님 자리가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초임 교사일 때는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지금은 선뜻 말하지 못하겠다. 훌륭한 교사나 좋은 교사는 다 아이들이 인정해 주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50~60명의 반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을 들으려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20여 명의 반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선생님을 바라본다. 그만큼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바람을 가지고 학교에 온다.
최은옥의 동화책 『내 멋대로 선생님 뽑기』에서 주인공 태우는 2학년 때 싫어했던 ‘잔소리 대마왕’ 선생님이 3학년때도 또 담임이 되자,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 뽑기를 한다.
체육을 아주아주 많이 하는 나운동 선생님,
진짜진짜 재미있는 나재미 선생님,
숙제를 절대절대 안 내주는 노숙제 선생님
우리한테 관심이 정말정말 많은 왕관심 선생님
하지만 태우는 이 선생님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개미들의 선생님이 된 태우는 개미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잔소리 대마왕’ 선생님의 잔소리가 태우를 위한 사랑과 관심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친절한 교사’를 가장 원한다. 하지만 친절하다는 것도 각자가 다 다르다.
어떤 아이들은 재미있고 유머 있는 선생님,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생님, 허용적인 선생님, 때로는 단호한 선생님을 친절하다고 한다. 반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선생님은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아주 힘들다. 요즘도 교사들은 학급에서 그런 아이들 곁에서 애쓰고 있다.
월급날이다. 예전부터 교사의 월급봉투는 얄팍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곁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교육현실은 그렇지 못해 퍽 안타깝지만,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 학교에서 즐겁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