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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pen Sally Jan 20. 2022

해외동포 여러분!

싱가포르에서 아이의 정체성 교육을 고민하다


어릴 적 집집마다 티브이가 한대뿐이던 그 시절 채널 선택권이 없던 나는 엄마 아빠가 고정시켜 놓은 채널을 옆에서 슬쩍슬쩍 강제 시청하다 보면 그 다지 재미있지 않고 세상 지루하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이는 바로 가요무대!  MC 김동건 씨가 “전 세계에 계신 해외동포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로 프로그램의 문을 열면

‘아 해외동포들도 이 프로를 보는구나? 난 별로 재미가 없는데 인기가 많나? 해외동포면 외국에서 살 텐데 한국 프로그램을 어떻게 볼까?’ 같은 질문이 문득 스쳤지만 어릴 적 나에게 크게 의미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해외동포 여러분’이란 단어와의 조우는 그렇게 뜨문뜨문 한 번씩 티브이에서나 마주하게 되는 다소 낯선 나의 삶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런 거리감을 가져다주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훌쩍 흘러 이제는 내가 바로 그 “해외 동포”가 되어 내 생애 쓸 일이라곤 없을 것 같은 단어 “고국” 이란 두 글자와 그 낯설던 “해외동포 여러분”이란 표현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 깊이 뜨거운 것이 불쑥 올라오곤 하는 해외살이를 하고 있다.

이렇게 타국에 살다 보면 특별한 어떤 한국의 것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그냥 한국에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던 철철이 엄마의 밥상에 오르던 나물 반찬이라던지 동네에 있는 시장에 마실 가서 사 먹던 간식, 집 근처 백화점에서 가끔 하릴없이 서성이며 책을 사고 이쁜 것들을 구경을 하던 그런 기억들과 죽마고우 친구와 드라이브를 가서 바닷가를 가득 담은 창을 앞에 두고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던 도란도란 정다운 시간들이 그립다. 그런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냄새와 맛까지도 가슴이 저릿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문득 그냥 가을 단풍이 그립고 한국적인 풍경에 괜히 애정 하는 마음이 훅 솟아나기도 한다.

그리고 특별히 애국심이 넘쳐나서 어떤 사명감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냥 한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애국심을 표현하고 품고 사는 일들이 많아진다.  

얼마 전 뜻밖에 내게 또 울컥하는 마음과 심란함을 가져다주는 일이 있었다.


1월이 시작되면 이곳 싱가포르 로컬 학교는 일제히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고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어 무엇인가 새로운 설렘이 새해와 함께 배로 찾아오는 시기이다. 이제 본격적인 고학년이 되고 나름 입시 모드 돌입 준비를 해야 하는 5학년이 된 아이는 설렘과 두려움, 약간의 긴장을 적절히 버무려서는 가슴 가득 지니고 새로운 학년 새 출발을 잘해주었다.  사실은 살짝 아슬아슬하고 슬쩍 웃음이 나는 시작이기도 했다. 개학 첫날 교실을 못 찾아갈까 잔뜩 긴장을 하고 교실로 가기 전  교내 북 샾에서 찾아가야 할 책이 있는 것을 알려주니 금방 ‘알았다’ 씩씩하게  대답은 아주 잘하였다. 그러고선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무념무상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모드가 가동되는 것이 뒤통수에서도 느껴지게 하더니만 휘적휘적 북 샾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교실로 향하는 것을 교문을 부여잡고 나는 애타게 바라보며 소용없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보내보았다. 과연 무사히 하루를 잘 보내고 올 것인가?

개학 첫날 교문 앞 풍경을  스스륵 추억의 한 페이지로 새기며 제법 씩씩하게 ( 이제 5학년 짬밥? 이 있으니) 그래도  첫날을 잘 보내고 하교를 했다. 교실도 잘 찾아갔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좋다고 말하며 극적으로 북 샾에 가야 한다는 걸 리세스 타임에 기억이 나 책도 잘 받아 왔다며 책과 또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낸다.


“엄마! 5 학년 되니 내셔널 플레지를 4개 언어로 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대!”


English version


“We, the citizens of Singapore,

pledge ourselves as one united people,

regardless of race, language or religion,

to build a democratic society

based on justice and equality

so as to achieve happiness, prosperity and progress for our nation."


Malay version


Kami, warga negara Singapura,

sebagai rakyat yang bersatu padu,

tidak kira apa bangsa, bahasa, atau agama,

berikrar untuk membina suatu masyarakat yang demokratik,

berdasarkan kepada keadilan dan persamaan untuk mencapai kebahagian,

kemakmuran dan kemajuan bagi negara kami.


Chinese version


我们是新加坡公民,

誓愿不分种族、言语、宗教,团结一致,

建设公正平等的民主社会,

并为实现国家之幸福,繁荣与进步,共同努力。


Wǒmen shì Xīnjiāpō gōngmín,

shìyuàn bù fēn zhǒngzú, yányǔ, zōngjiào, tuánjié yīzhì,

jiànshè gōngzhèng píngděng de mínzhǔ shèhuì,

bìng wèi shíxiàn guójiā zhī xìngfú, fánróng yǔ jìnbù, gòngtóng nǔlì.


Tamil version

சிங்கப்பூர் குடிமக்களாகிய நாம், இனம், மொழி, மதம்

ஆகிய வேற்றுமைகளை மறந்து ஒன்றுபட்டு, நம் நாடு

மகிழ்ச்சி, வளம் முன்னேற்றம் ஆகியவற்றை அடையும் வண்ணம்

சமத்துவத்தையும், நீதியையும் அடிப்படையாகக் கொண்ட

ஜனநாயக சமுதாயத்தை உருவாக்குவதற்கு

உறுதி மேற்கொள்வோமாக.


순간 예전에 아이가 유치원 K2일때 대표로뽑혀 싱가포르 국경일날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싱가포르 국기를 게양하고 싱가포르 내셔널 플레지를 앳된 목소리로 낭독하고 싱가포르 애국가를 선창 하던 장면이 오버랩되며 그날의 충격과 가슴 한편이 저릿하며 울컥하던 감정이 다시금 올라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해외살이를 하며 우리 아이의 정체성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아주 적나라하게 아플 정도로 명백한 현실과 마주했다.

‘내가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는구나’

‘내가 그랬듯이 학교에서 저절로 배울 수 없는 거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했던가?’

‘앞으로 어떻게 이 아이를 가르쳐야 하나…’


온갖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내 가슴에 물결을 일으켰지만 사실 그날도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

그날은 당장 집으로 와서 너투브를 뒤져 애국가를 틀었다.

“한국의 애국가는 싱가포르와 스케일이 달라~

4 절 까지 있어!! 멋지지?”

“우리 한국은 역사가 5천 년이 넘어 대단하지 않니?” 뭔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멘트도 날려가며 열심히 애국가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국의 애국가도 모르고 싱가포르 애국가를 부르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다음 해는 한국에 가서 경주 여행을 갔다.

아이가 왕릉을 궁금해해서 보여주고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을 둘러보고 왔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제주도로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왔다. 그리고 다음은 민속촌을 계획한 우리의 계획은 코로나로 좌절되었다.

거창하진 않지만 우리가 한국인임을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했다. 소소하게 늘 한국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소소하게 책도 읽어 주고 역사 야기도 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핑계 같지만 늘 아이 앞에 산적한 현재의 할 일들을 시키고 공부를 하게 하다 보면 자꾸만 생각했던 만큼 한국을 더 알게 하는 교육 아니 시간들을 가지기는 녹록지 않았다. 아이는 그새 애국가를 다 잊고 말았다. 역사적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밖에 기억을 못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는 읽을 수도 없는 타밀어로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싱가포르 내셔널 플레지를 중얼거린다.

다시 나는  고민하는 현실을 마주하며 마음 한편이 서늘하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1974 이후 맹세문이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다.)


오늘도 진심을 다해 나는 아니 우리는 고민해보고 있다.


너는 어떤 마음을 가진 어떤 정체성을 지닌 멋진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올곧고 늘 가슴 뜨겁게 꿈꾸는 행복한 세계인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우리의 뿌리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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