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초등학교 학부모의 욕심 비우기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다짐이 흔들리지 않게 기록을 남겨둔다.
싱가포르 공립 초등학교는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6 주간의 긴 겨울 방학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매년 1월 2일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올해는 코로나로 뒤죽박죽 된 학사일정으로 보통은 초등 3 학년부터 치르는 학년말 기말고사가 없어지고 미니 테스트와 수업 시 아이들의 학습능력 평가한 것과 기타 이전의 시험 점수를 토대로 아주 혼돈의 도가니에서 성적이 발표되었다.
우리 아이의 학교는 학년말 각 과목별로 반에서 성적 우수자를 뽑아 Best in (과목)으로 시상식을 하고 상장과 소정의 파퓰러( 싱가포르 제일 유명한 서점 및 문구점) 상품권을 수여한다. 아이는 1,2, 3학년 영어 중국어로 상을 받아왔다.
아이가 “엄마 실망하지 마
나 이번에는 상을 못 받을 것 같아”
하는 얼굴이 울상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주기 전 불쑥 나도 모르게 실망과 화가 올라왔다.
평소에 내가 생각한 만큼 성에 차지 않게 하던 아이의 태도, 내 기준으로 많지도 않은 양의 내가 주는 숙제로 실랑이하던 일들이 스쳐가며 ‘그러게 내가 하라는 것만이라도 똑바로 했음 이것보다 잘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기분이 나빠졌다.
끝내 아이를 바라보며 열심히 했으면 됐다는 말을 해주지 못하고 애써 괜찮은 척 물었다.
“ 상 못 받는다니 기분이 안 좋아? “
“ 응… 선생님이 명단을 주는데 끝내 내 이름이 안 나와 마음이 간질간질 이상하고 눈물이 좀 나올 것 같았는데 참았어. 가슴이 좀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그리고 학부모 미팅이 무서워…”말을 하던 아이가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요새 코칭을 공부하는 엄마 아닌가? 머릿속에선 아이를 안아주고
‘너도 속상했겠구나, 다음에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부모 미팅이 왜 무서워?”라고 다정하게 가만히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묻고 싶었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면 이승과 안녕이지 않나?
나는 “이번에는 네가 열심히 안 했잖아
내년에 노력해봐! 열심히 수업시간에 잘했으면 학부모 상담이 뭐가 무서워?”하고 개버릇 남 못주고 시큰둥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쿨한 척하는 내 마음과 다르게 자꾸만 화가 나는 게 아닌가?
퇴근 한 남편에게 “ 우리 아들은 공부 쪽은 영 아닌가 봐! 도대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했기에 벌써 상담이 두렵다고 난리네… 온라인 등교랑 일정이 뒤죽박죽이니 뭐 학교에서도 공부 똑바로 안 했겠지” 지레짐작으로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데
“ 이렇게 코로나로 난리일 때 건강하게 학교 잘 다녀 준 게 어디야~ 왜 자꾸 욕심을 부려~ 해맑게 이쁘게 잘 크잖아 “ 하는데 나는 거기다 또 버럭 한마디 해버렸다.
“ 낼모레 5 학년이 되고 이제 PSLE 가 코 앞인데 아직도 해맑기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당신은 아이 성적에 예민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쿨한 엄마 어디 갔어?” 남편이 장난반 진심반 툭하고 한마디를 던진다.
‘그렇네… 나는 세상 쿨한 엄마 코스프레만 세상 열심히 하고 다닌 건가?’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이의 성적에 이렇게 연연하는 이유가 뭐지? 정말 내가 아이의 성적에 연연하고 일종의 권리를 행할 만큼 최선을 다해 살뜰히 챙기고 봐주기라도 했나? 이것저것 시켜놓고 많은 부분 아이의 책임으로 맡겨 놓고 왜 그 결과에 내가 이리도 휘둘리지?
성적이 좋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서?
아이의 긴 인생에 중요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순 있는데 왜 고작 4 학년인 아이의 성적에 내 기분이 이렇게 태도로 나타나 싸늘하기가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몰아치는 눈보라 같단 말인가?
순간 깨달았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부끄럽고 치사스럽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대놓고 자랑하지 않더라도 학부모로서 아이가 조금은 잘해준다면 괜히 으쓱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를 다 키운 것도 아니고 아이가 어디에 내놔둬 모두가 인정하는 영재도 아니고 학교에서 그래도 수업을 잘 따라가 주어 잘해준 그 노력을 한낮 엄마의 자랑거리로 만들어 버린 참으로 속물스런 엄마가 나였구나. 그것도 늘 ‘나는 아이의 공부에 연연하지 않는다’ 온갖 깨인 척 쿨한 척 말하고 다닌 주제에…
순간 부끄러웠다.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지 못한 것이 참으로 미안했다.
김미경 강사가 말했던가? 자신의 철학으로 아이를 교육시키고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자랑이 되게 하지 말고 엄마가 공부해서 아이의 자랑이 되라고…
아이의 자랑이 되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내가 조금은 대견해지기도 하였다.
이런 반성하는 마음과 여러 복합적인 마음이 마음을 휩쓸고…
그렇게 드디어 호환마마보다 무섭던 학부모 상담의 날이 소리도 없이 턱밑에 바짝 다가와 노크를 해댄다.
아이의 걱정이 무색하게 줌으로 시작한 학부모 미팅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과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부담임 선생님이
모든 부분에서 발전했고 친구들과 아주 사이좋게 학교도 잘 다니며 가르치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는 말을 하신다. 조금 더 일관성 있는 학습습관 기르기에 신경을 써준다면 더 잘할 것이라고 폭풍 칭찬과 공부 팁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감동의 폭포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시원하게 걱정을 씻어주었다.
엄마보다 더 확신에 차 기분 좋게 한껏 아이를 치켜올려주는 선생님들이 , 행여 모든 아이들에게 다 해주는 그런 칭찬이라도 엄마가 보인 실망 앞에 움츠러든 아이의 어깨를 가슴을 활짝 펴게 해주는 듯하여 너무나 감사했다.
“We wish 00 all the best too.
It was a pleasure to teach him. I'm sure he will grow up to be someone great.”
또다시 어떤 욕심이 불쑥 솟아올라
또 어떤 마음이 태도를 지배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공부 욕심을 버린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했다.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그동안 상을 받아 온건 네가 정말 대단한 것이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엄마가 알겠어. 상을 못 받아도 괜찮아 선생님이 모든 부분에서 발전했다고 했잖아! 노력했다는 거야
선생님들이 한 말 잘 기억했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생각 헤볼까?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해! 우리 같이 또 열심히 해보자.”
코칭을 공부하는 엄마답게 말했나?
(크아… 혼자 감탄을…ㅋㅋ)
방학 맞이하여 일주일 실컷 놀고 싶다는 아이에게 “ 그래” 해놓고
‘아… 또 일주일 후 공부 안 한다면 어쩌지’ 걱정하는 비겁한 마음을 먼저 품고 일단 원 없이 놀게 해주고 있다.
‘그… 그래도… 다시 공부 하긴 할 거지?!’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내 맘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아이를 향한 욕심이 가득했던 내 마음도 한 번 더 토닥이며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사랑하는 엄마들의 아니 학부모들의 그 마음들도 다 토닥이며…
우리의 그 마음은 다 옳다!
아이를 나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사람대 사람으로 무한 신뢰와 공감을 보내는 그런 내가 되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그런데 자꾸 5 학년 문제집을 잔뜩 사러 가고 싶은 이 마음은 옳은가?!
옳…옳… 옳다고… 하고 싶다!
옳…옳…. 옳을 것이야!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저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한줄기마다 고유한 이름과 성질을 붙이고 규정지을 수 없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정은 내 존재의 상태를 시시각각으로 반영하는 신호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 불안을 느낀다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할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왜 그런 걸까?’ 곰곰이 나와 내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엄마가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마음 없이 여유 있게 내 존재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이의 입장에서 더할 수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다. 엄마의 그런 태도는 아들이 자기 말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감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