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타이프]
모든 바깥은 안보다 따뜻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길 위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어떤 실내에서보다 안온하기 그지없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거나 아니면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은 날이더라도, 나는 안보다는 바깥에 있을 때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길을 걷다보면 내 쪽으로 걸어오는 행인과 부딪히는 날도 있었다. 해질녘이면 간혹 제 갈 길을 가던 작은 날벌레들이 실수로 내 이마에 부딪혔다가 허공에서 잠깐 비틀거린 뒤 다시 날아가기도 했다. 초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잠시나마 평형감각을 잃은 그 귀여운 벌레들을 나는 좋아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도로 위를 바삐 오가는 저 무수한 타인들을 나는 진심으로 좋아한다. 안보다는 바깥, 길 위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온함을 느끼게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바깥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인파로 북적이는 장소를 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집에서 보내는 게 습관처럼 돼 버렸지만, 언제라도 내가 기어나갈 바깥 - 나와 같은 인간들이 숨 쉬고 활보하는 공간 - 이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눈물겹다.
나는 그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아는 체를 하거나 살갑게 대해주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좌표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자기만의 궤도를 돌며 이따금 희미한 빛을 송수신하는 외로운 행성들처럼. 언젠가는 빛이 꺼진 채 사라져갈 비슷비슷한 운명을 조금은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길 위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선다. <바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