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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봄, 6화

그대를 위해 남겨둔 자리

by 김기수

2025년의 봄, 6화


그대를 위해 남겨둔 자리


언제부터였을까.

그 사람이 없는 풍경에 익숙해진 건.

이제는 없어진 목소리를 마음속에서만 되뇌고,

함께 걷던 거리에서 혼자 걷는 법을 알게 되었을 무렵.

나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하나 남겨두기로 했다.


그 자리는 특별한 모양도, 화려한 장식도 없다.

그저 조용하고 단정한 곳.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스칠 때

누군가 앉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자리.


사람을 마음에 담는다는 건,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남기는 일이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잊혀져도 어쩔 수 없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 자리를 비워둔다.


기다림은 늘 조용하다.

그리움은 소란스럽지 않다.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는 꽃처럼

내 안의 그 자리는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를 위한 향기를 잃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웃던 날,

작은 다툼에도 서로를 걱정했던 순간,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통하던 저녁.

그 모든 순간이

내가 그 자리를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이따금 그 자리를 지나며

나는 속으로 그대에게 말을 건다.

“잘 지내나요?”

“지금 어디쯤 있나요?”

“혹시 이 자리, 기억하고 있나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받는다.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마음을 줬고,

그만큼 내 삶에 스며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작은 습관을 만든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듣고,

자주 가던 골목을 괜히 돌아보고,

함께 마시던 커피의 맛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곧

그대를 위한 자리다.


떠난 자리를 탓하지 않고,

남겨진 마음을 억지로 지우지 않으며,

그저 담담히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다.


어느 날,

그대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자리,

그대를 위해 늘 비워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대가 다시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 자리는

단지 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사랑을 놓지 않기 위한 증표이기도 하다.


그대에게 배운 마음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기다림도, 그 빈자리도

모두 다 의미가 될 것이다.


어느 봄날,

그대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그대를 위해

꽃 한 송이를 피워둘 것입니다.


다음 화 예고 – 2025년의 봄, 7화

여름의 문턱에서 노란 장미를 보다


2025년의 봄,

한 계절이 끝나기 전,

나는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마주했습니다.


아직은 봄이지만

어딘가 여름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공기 속에서

그 꽃은 조용히 피어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무르익기 전의 감정,

피어오르다 멈칫하는 마음,

그리고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완전히 피지 않아도,

노란 장미는 봄을 닮은 채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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