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턱의 봄의 꽃, 노랑 장미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경계, 그리고 노란 장미에 담긴 감정과 기억을 은은하게 녹여내는 따뜻하고 섬세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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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봄은 유난히 조용했다.
꽃은 피었고, 바람은 불었고, 햇살은 따뜻했지만
내 마음은 한 발짝 느리게 그 계절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작은 정원 한 귀퉁이에서
나는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그 꽃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은 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피어 있었다.
붉지도, 하얗지도 않은 노란빛.
어딘가 서늘한 듯 따뜻하고,
다정한 듯 멀어진 색.
그 순간 나는
이 계절이 ‘봄’과 ‘여름’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완연한 봄도 아니고,
덥다 말하기엔 아직 이른,
어떤 ‘사이’의 시간.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경계에서 피어난 이 노란 장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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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미는 흔히 ‘우정’이나 ‘질투’를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마주한 이 한 송이는
그 어느 의미보다도 ‘기다림’을 닮아 있었다.
피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마음,
조심스레 다가가는 용기,
말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머무는 고백.
장미는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주저하고, 돌아서고, 때로는 멈춘다.
그 마음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왜냐면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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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그 장미 앞에 조용히 앉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떤 말도 없이,
어떤 약속도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혹시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확신보다는 조용한 신호,
정열보다는 잔잔한 감정,
그리고 ‘지금 여기’에 머무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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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언젠가 진다.
하지만 오늘 피어 있는 이 장미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계절보다 오래 남는다.
2025년의 봄.
나는 여름의 문턱에서
노란 장미 한 송이로 인해
이 계절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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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노란 장미처럼 천천히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봄이 지나고,
꽃이 지고,
햇살도 점점 짙어지는 어느 날.
그렇게 계절이 넘어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조용히 남아 있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봄이 진 자리’에 남겨진 마음을 마주합니다.
피어났던 설렘,
말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끝내 떠나보내지 못한 누군가의 뒷모습.
“계절은 지나갔지만,
내 마음은 아직 그 봄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