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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커피의 잔을 들고

집에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커피의 잔을 들고 멍 때리고 있습니다

by 김기수 Mar 12. 2025

집에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커피의 잔을 들고 멍 때리고 있습니다


마주 앉은 적막이란 게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외로움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여유라 부른다. 나는 오늘, 이 적막을 ‘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시선은 저 너머 창가에 머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시간.


“가만히 있어도 되는 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이 오늘보다 더 단단해진다.”


커피잔의 온기가 손끝을 감싼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커피 한 잔도 ‘깨우기 위한 도구’가 되기 쉽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 한 모금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멍 때림의 기술


어떤 이들은 멍 때리는 시간을 ‘낭비’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깊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볼 때, 가장 자유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고, 아무 말 없이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솔직한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내 안에 숨어 있던 말들을 데려온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심지어 나조차도 스스로를 분석하지 않는 시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해야 하는 일’에 묶여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 해야 할 태도. 그것들을 내려놓고 단순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쉼이 필요한 이유


우리 삶은 속도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갈 때,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건, 결국 목적지를 잃은 채 떠도는 것과 같다.


“쉼 없이 달리면, 언젠가 나조차도 나를 잃어버린다.

그러니 가끔은 속도를 늦춰야 한다.”


사람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쉬는 것을 잊는다. 일과를 채우고,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를 쌓아 올리면서도 정작 쉬어가는 법을 모른다. 마치 계속해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하지만 숨은 마셔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쉬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들이마실 수 있다.


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끔 멈춰야 한다. 그래야 다시 걸을 수 있다.


음악이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피아노 선율이 여전히 흐른다. 그 위에 살짝 내 숨소리가 얹힌다. 창밖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커피잔을 들어 올린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 더하지 않아도, 덜어내지 않아도. 나는 오늘, 그저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살아간다.”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는 살면서 늘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더 많은 성취,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삶. 하지만 그렇게 끝없는 ‘더’를 좇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능력.


살아간다는 것은 꼭 크고 거창한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그것도 분명한 ‘삶’이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사는 법’ 자체일지도 모른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대신 확실하게 살아가자.”


그리고 나는 오늘, 확실하게 살아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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