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Apr 07. 2024

보홀 여행 9. 고래상어다!

보홀여행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여섯 시에 고래상어 투어를 간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수영을 못해도 큰 고래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거대한 고래를 뒷배경으로 물속에서 포즈를 잡은 아주머니가 자랑스럽다는 듯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정말일까? 나도 할 수 있을까? 기대 찬 딸들도 나처럼  들떠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코앞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니...

단체여행에서 개별여행으로 바꾸니 운송수단도 바뀌었다. 호텔 앞에는 일찌감치 도요타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 내내 지프니에, 툭툭이에 머리를 찧고 다닌 터라 반짝이는 자동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여행은 습관처럼 누리는 고마운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을 준다.

에어컨과 팝송이 어우러진 자가용을 타고 삼십여 분을 달려 고래상어 스폿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고 새벽의 선듯한 바다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주차장에서 100미터쯤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침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변엔 우리처럼 새벽을 달려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북적인다. 저만치 보이는 샤워장엔 이미 고래상어를 보고 온 사람들이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의 순서는 언제일까.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고래상어를 보러 가기 전에 몰려든 사람들은 함께 앉아서 주의사항을 들었다. 무대처럼 생긴 벽에는 고래상어 그림과 함께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고래와의 간격은 5미터 밖으로 유지할 것,  다가가서 만지지 말 것, 카메라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 것,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지 말 것, 선크림 사용 금지 등등. 이름표를 목에 건 직원들이 필리핀식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내 나라말이 아니라 반은 알아듣고 반은 어리둥절하다. 또다시 딸들이 척척 알아듣고 대답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혼자 있었다면 아는 단어 모두 꺼내고 안되면 손짓 발짓을 더했을 것이다. 아이들이랑 오니 이런 것들조차 일사천리로 해결이 된다. 내가 얹혀 다니는 건가?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행복한 시절이 얼마나 유지될까? 때가 되면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될 테지만 함께 있는 지금이 아무튼지 좋다.


가두어 기른 고래상어가 아니라던데 혹여 보지 못하면 어떡하지? 정말 고래상어가 코앞에 있을까? 배를 타고 나가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침해가 눈부시다. 고래상어를 보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다섯 마리의 고래상어를 봤다고 한다. 나의 걱정은 접어두어도 될듯싶다. 찰랑거리는 물결무늬의 모래톱을 지나 작은 배에 여덟 명의 사람들이 올랐다. 엔진이 있는 또 다른 배가 우리 배를 끌고 망망대해를 향해 달려간다. 깊은 바다로 가니 금세 바다 물색이 짙은 초록으로 변했다. 심해 어종인 고래가 움직이려면 당연히 깊어야 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배의 엔진이 꺼지고 다섯 척의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모였다. 파도가 일어 배가 출렁인다. 이제 막 떠오르는 햇살을 마주하니 눈을 뜰 수가 없다. 도대체 고래상어는 어디에 있을까?


필리핀 직원들은 관광객들이 가까운 곳에서 어미 고래를 볼 수 있도록 어미 고래에게 연신 먹이를 뿌리며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덩치가 산만한 고래는 다섯 척의 쪽배에서 내리는 인간들에 아랑곳 않고 큰 입을 벌려 바닷물에 섞인 새우를 받아먹는다. 입은 뭉뚝하니 가로로 1미터 정도로 크다.

가이드들이 사람들에게 물에 들어가라고 손짓하니 다들 용기 있게 잠수를 한다. 맨 마지막으로 나도  스노클링 장비를 쓰고 호기 있게 물에 몸을 담갔다. 밤과 새벽을 견딘 아침 바닷물은 차가웠다. 더욱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로 몸이 더 움츠러든다.

얼마나 내려가면 바닥일까? 쓸데없는 상상에 몸서리가 쳐졌다. 과연 가까이서 고래상어를 볼 수 있을까? 딸들은 수중촬영 장비인 고프로를 들고 이미 사라졌다. 떠있는 배들도 이리저리 출렁거리고 내 몸도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닌다. 저런! 어제 만났던 바다보다 사납다. 배에 달려있는 대나무 날개를 죽어라 잡았다. 손을 놓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 스노클링을 했던 용기를 불러내어 또다시 머리를 물속으로 넣었다. 커다란 물고기의 몸통이 보였다. 작은 상어  두 마리가 순식간에 발밑으로 지나갔다. 와! 이건 진짜로 리얼이다!  수족관이 아닌 곳에서 보는 생물 고래!  배 위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던 가이드가 " 아기 고래다! (baby shark!)"이라고 외쳤다. 조금 전에 지나갔던 것이 아기 고래였다.

엄마를 좋아하는 것은 고래나 사람이나 같나 보다. 특별히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작은 딸이 떠올랐다. 지금은 바다 어딘가로 들어가 고래상어를 구경하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다. 세상 어느 동물이 작은 새끼 면 몰라도 다 큰 새끼를 데리고 다닐까. 나의 경우를 봐도 세상 어리석은 동물이 인간인가 싶다.

힘이 빠졌다. 내 몸이 바다와 함께 출렁이도록 내맡길 용기도 점점 사라졌다. '봤으니 됐지 뭐!'

배로 올라오는 사다리에 한쪽 다리를 얹었지만 힘이 모자랐다. 또다시 웃긴 광경이 펼쳐졌다. 배는 여전히 출렁거리고 얼굴로 머리 위로 바닷물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건져 줄까 묻는 가이드와 남편, 그러다가는 여기저기 상처가 날 것이 뻔했다. 도움을 받는 것 또한 때가 있다. 이건 내 스스로가 해야만 한다.

내 몸이 참 무겁다. 가까스로 배 위로 올라왔다.

물에 들어간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에너지가 다 소진된 느낌이다. 이번 도전은 너무 무모했던 걸까?

보홀 홀릭에 빠져버린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다음 버킷리스트에는 고래상어랑 멋진 폼으로 사진을 찍어 보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홀여행 8. 너그러워지는 여행매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