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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l 20. 2024

길고양이 맛집,가래들길

홍천살이

연이은 폭우가 그쳤다. 저녁 무렵 새끼 고양이 두마리와 어미 고양이가 찾아왔다. 한 달 전쯤, 창고 뒤에서 동생이 발견한 그 녀석들이다. 사진으로만 본 녀석들은 모두 네 마리였는데 다른 두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마음이 회색빛 하늘과 같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두 마리 새끼들을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다. "저 집에 가면 가끔 밥을 준단다. 오늘 문이 열려 있는걸 보니 아마 밥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몰라. 자, 얘들아 나를 따라오렴. 한 눈 팔지 말고 엄마곁에 꼭 붙어있어야 한단다"

어미고양이 몸은 비에 쫄닥 젖어 있었지만 새끼를 지키고 있는 어미고양이의 눈빛은 새끼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던 할 수 있다는 결의에 차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움직임을 멈췄다. 외려 나는 반가워서 가까이 가니 '걸음아 날 살려라' 며 세상에서 제일 빠르게 도망을 갔다. 뛰어야 벼룩이겠거니 하고 뒤쫓아 나갔지만 도통 찾을 수 없다. 숨을 할딱거리며 움직임을 멈추고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배가 고프면 금새 되돌아 올 것이니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냄새를 풍겨 유인을 하려고 먹이를 한주먹 펼쳐 놓았다.

언제나 고양이 식구들이 나타날까?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서는 끝없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다른 일은 모두 지차하고 고양이 가족을 기다린다. 눈에 마당의 풍경이 들어왔다. 골짜기의 비구름이 바람이 되어 흐르고 어디선가 까만 잠자리가 나타나 눈을 어지럽혔다. 몽땅 잘린 클로버는 또다시 아기 잎사귀들을 다닥다닥 내어 놓았다. 클로버 잎 위에는 미쳐 떨어지지 않은 빗방울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난다.

흰나비 한쌍도 나리꽃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여름의 한가운데임을 알리는 나리꽃은 초록 들판의 홍일점이다. 오랜만에 만난 햇살, 그 빛에 홀려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 이래라 저래라 말 많은 사람들에게 이 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쉬어가도 된다고...


빼꼼! 1번, 치즈색 새끼고양이가 고개를 내민다. 보란듯이 어미가 뒤따라 얼굴을 내밀었다. 쪼르륵! 제일 작은 2번 흙색 고양이가 내 눈길도 무시한 채 성큼 들어왔다. 어쩐 일인지 내 눈과 마주쳤는데도 천연덕스럽게 먹이를 먹는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는 천방지축 어린 녀석 일 수도, 제 등을 버티고 서 있는 엄마 고양이 빽을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분모가 있는것이 분명하다. 내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엄마고양이 처럼 자식을 지켜내려는 본능이 있다. 그 방법이 어떻든,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중요치 않다. 엄마에게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때 새끼들은 당당하다. 세상의 잣대는 수없이 많지만 새끼고양이의 굴하지 않는 마음은 엄마고양이에게로 부터 나온다.


작고 귀여운 생물체를 나 혼자 볼 수 없기에 동영상을 찍으려 움직이니 또다시 줄행랑이다. 또다시 기다림. 오분이 채 되기도 전에 새끼고양이 귀가 보였다. 살곰살곰 세 식구가 또 나타났다. 맘껏 먹으라고 커튼 뒤로 몸을 숨었다. 카메라 렌즈만 밖을 향하고 우리들의 숨바꼭질은 고양이식구들이 배가 불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내일도 가래들 맛집을 찾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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