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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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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9. 2024

호박 만두 속에 엄마가 있다.

여름은 언제쯤 물러날까. 여전히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내일 비가 오면서 더위가 차츰 사라질 것이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정말 그럴까 하고 의구심이 든다. 더워도, 혹은 추워도 이래도, 저래도, 산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일을 해야만 한다.

오랜만에 딸이 왔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서로 조금씩 비켜주고 보듬어주어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굴러간다. 보고 싶지만 오라고 할 수 없고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오묘한 사이, 자식과 부모 사이다

그래도 눈 맞출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내내 만들었던 호박 만두소를 또 만들었다. 이 음식은 대중화하긴 글러먹었다며 구시렁거리기를 서너 시간, 절이고 치대고 몸과 마음을 탈탈 털어 넣어 양푼 가득 완성했다. 딸이 해야 할 일은 만두피에 소를 넣어 반달 만두를 완성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내 말을 이해하고 도착하자마자 식탁 위에 앉는 애들이 고마웠다. 조잘조잘 만두피가 다 없어질 때까지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작가의 길을 가는지라 글쓰기의 고단함에 대해, 최근 본 영화에 대해, 함께 하는 이야기엔 나름 공통분모가 있어서 좋다. 나도 요 며칠 본 책과 영화 얘기를 했다. 눈 맞추고 귀 기울여주는 과년한 딸들과 이야기하며 사는 나는 부러울 것이 없다.  

"엄마, 지난번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만약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가장 그리울 것 같은 음식이 뭐야?'라고 물어서 바로 호박만두를 외쳤어." 눈을 위로 굴려가며 입맛을 다신다. "나도 호박만두야" 바로 내가 말했다. 호박만두에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들어있다. 레시피를 아무리 상세하게 적어줘도 얼마나 오랜 시간과 땀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직접 해 봐야 알 것이다. 내 손과 마음도 함께 빚어진다는 것도 하나둘 완성되는 만두를 보며 깨닫겠지. 내가 아무리 맛있는 호박만두를 빚어낸들 그 속엔 우리 엄마 냄새가 없다.

대를 이어 만드는 호박만두가 같은 맛은 아닐지라도, 난 여름이면 호박만두를 또다시 빚는다.

명절 연휴 내내 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나가는 산모의 진통 소식을 기다리는 나는 하염없이 집안일을 했다.


차를 청소하다 어머니가 쓰던 피터 레빗 토끼키링을 발견했다. 꽃무늬 옷은 헤어졌고 자주 닿았던 부분은 유난히 더 꼬질꼬질하다. 토끼 인형은 차 안 서랍에서 오래전 엄마처럼 잊히고 있었다. 쓰레기통에 넣으리라 마음먹었다. 십오 년이 지나갔으니 이젠 내려놓아야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토끼 인형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열흘이 지나도록 오가며 엄마를 보듯 토끼 인형을 본다. 버릴까 말까 하는 두 감정 사이에서 난 아직도 허허롭게 서 있다.

딸들과 호박 만두를 빚는 식탁 위, 토끼 인형이 우리들을 보고 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호박만두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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