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밖이 밝다. 코앞의 창을 열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는 작은 새소리와 함께 나를 깨운다. 한참을 같은 리듬으로 들렸던 새소리는 좀 더 멀리서 오는 까치들의 합창으로 바뀌었다. 눈을 다시 감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몸이 웅크리라고 말한다. 엄마의 자궁 안의 내 모습이 이랬을까? 무릎이 가슴까지 올라오고 고개는 무릎을 향한다. 두 팔은 무릎을 껴안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잠을 잔 건가? 작은 새의 소리도, 까치의 소리도 사라졌다. 아!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가을이 문턱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그때의 공기와 지금의 공기는 다르지만 왠지 그때 공기 같은 것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엄마를 잃은 서러움은 시간이 조금씩 갉아먹어 아주 얇아졌지만 더 얇아져 사라지는 것은 섭섭하다. 엄마를 보내고 온 가을 냄새는 좋아하던 가을마저 데려가 버렸다. 운치 있던 나의 가을은 너무나 쓸쓸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을이 없었으면 했다.
내 뜻과 상관없이 뜨거운 태양은 해마다 가을을 데리고 왔다. 날마다 꺼이꺼이 삼켰던 눈물은 많은 계절의 바뀜 속에 바닥을 드러내었고 잊힘으로 살게 한다. 툭툭 털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지. 살아있는 한 그래야지. 가을에게 다가가야지.
코로나로 엄마의 기일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는 각자가 알아서 기일을 챙기기로 했다. 엄마를 제일 먼저 만나러 간 막내 동생이 보내온 사진, 납골함 유리창에 쪽지가 붙어있다. 미안하다는, 잘못했다는 아버지의 일 년 전 메모다. 작년 광복절 기일에 우리가 다녀갔을 때는 없던 메모, 메모를 남긴 날은 14일로 적혀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날자를 앞당겨 쓴 어리석은 아버지가 보인다. 미안과 잘못이 진정인지, 잘못함의 무게가 얼마만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했으니 잘못한 것임은 틀림없다. 이제는 그 메모조차 쓸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된 아버지는 엄마의 기일을 기억이나 할까? 오히려 그리 된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십줄에 들어선 막둥이는 아직도 제일 엄마를 그리워한다.
일 년 만에 가는 납골당, 유골함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라도 매년 지루하지 않게 공간을 꾸민다. 이번엔 이십이 갓 넘은 엄마의 사진을 준비했다. 프린터 기계가 노랑, 청록, 붉음을 입히자 고운 처자가 종이 위에 그려진다. 낯선 엄마의 처녀 적 사진, 나의 눈매가, 내 딸의 눈매가 엄마에게 있다. 숱이 풍성하고 고운, 사진 속의 아가씨가 일흔넷의 삶을 살며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떨구고 떠나갔다. 엄마가 엄마여서 난 참 좋았다. 엄마는 내가 딸이어서 좋았을까? 나도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 노릇을 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삶 중에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딸이 아니고 아들이었다면? 나무를 하러 가는 대신 하고 싶은 공부를 했었더라면? 맏딸이 아니고 셋째 딸이었더라면? '만약'이 현실이 되라고 눈에 익은 엄마 사진을 떼어내고 꿈 많던 처녀 적 사진을 놓아드린다.
떠난 날을 꼭 기억해 달라는 듯 광복절, 칠월칠석에 하늘로 돌아간 엄마가 그리운 늦여름이 또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