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장흥.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차로 네 시간 반, 거리로 353킬로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내가 사는 안양으로 셋째 아기를 낳으러 오기로 했다. 셋째 아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제일 처음 내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마치 셋째를 이 먼곳까지 낳으러 올것인양. 하지만 예전에 두 아기 모두에게 한 말 처럼 이곳까지 아기 낳으려 오는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니까. 올라 온다고 해도 사실 말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는 길 내내 모두는 마음을 조릴 수 밖에는 없다. 어디에서 아기를 낳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 한 채 달은 차고 기울었다. 아기는 건강히 자랐고 곧 태어날 날이 다가왔다.
간간히 통화로 운동을 권하고 건강한 먹거리로 아기를 키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탈 없이 잘 자란듯 보였지만 가늘가늘한 엄마는 만삭이 된 즈음 힘들어 했다. 각종 검사결과는 정상을 유지하고 있고 아기도 크지 않았다. 드디어 결정을 했다. 멀더라도 올라오기로.
첫아기는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아기를 낳아보겠다며 며칠을 집에서 진통을 했다.그럼에도,아기는 태어나지 않았다. 지루한 며칠이 지나자 누군가에게 조언을 듣고 싶었던 그들은 간신히 조산사인 나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들의 정황을 듣고 난 후 이제는 병원에 가실 때가 되었다고 조언했다. 처음으로 그들과 연이 닿는 통화였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들은 순순히 내가 제시한 의견에 따랐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찰을 해 보니 자궁문은 거의 다 열려 있었다.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입원한 시간부터 무려 열 두시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아기를 낳았다.엄마의 골반에 맟추느라 애쓴 아기의 머리는 외계인처럼 길죽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힘들었지만 자연 출산으로 첫아기를 낳았으니 첫아기 만큼만 자란다면 수월 할거라는 위로를 건냈다. 임신 중반기에, 예쁜 꽃다발을 들고서 먼길을 달려 나를 찾아왔다. 꼭 와보고 싶었다면서 출산방과 교육실, 거실에 붙어 있는 여러 사진을 보며 행복해 했다. "저도 황홀한 출산을 할 수 있을까요?"
눈을 깜박이며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 낳는 이의 생각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죠?" 그녀는 계속 황홀한 출산을 꿈꾸는듯 보였다.
그녀의 둘째는 집에서 멀지 않은 조산원에서 낳았지만 황홀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려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는 통에 첫아기 못지 않게 힘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아기 둘을 낳아보았지만 황홀의 경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빨리 끝낼수 있을까라는 궁리뿐이었고 그것 또한 다 소용이 없었다. 이를 악다물고 참아내는것이 다 였다. 누군가의 위로와 따듯한 것들은 준비하지도, 제공되지도 않았다. 그 때만 해도 공장식으로 아기를 낳는것이 지당했다. 내가 조산사임에도 감통을 위한 따듯한 물이나 핫펙, 부드러운 터치등은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참았고 시간이 흐르자 아기가 태어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내가 다시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면 깨끗한 욕조에 따듯한 물이 24시간 나오며, 말없이 나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불편감 없이 모든것이 제공되는 곳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 아마 그녀가 원하는것도 나와 같지 않을까.
셋째가 생기자 이번에는 꼭 올라가서 아기를 낳겠다며 그녀는 결의를 다졌다. 결의가 오는 길을 줄여 주지도 않을 것이고 순산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먼 길을 달려오겠다고 했다. 여러 비상사태에 대한 경우의 수를 늘어놓아도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밀어부쳤다.
나도 그녀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신념은 목표에 도달하면서 또다른 힘으로 작용한다. 나는 출산을 도우며 여러번 그런 현장을 만났다. 골반이 작아도, 아기가 점차 힘들어 해도, 온갖 사람들이 걱정을 늘어 놓아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어머니들에게서 나온다. 덩달아 나도 함께 단단해지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하나도 똑같지 않고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십 년 넘는 나의 아기 받는 경험은 매번 아기를 받아낼 때마다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출산 앞에선 언제나 긴장하고 걱정하며 온갖 경우의 수를 대비한다. 물론 많은 경험으로 빠른 대처를 할 수 있긴 하다.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만 하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 아기를 낳으러 오는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요구한다.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된다는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서로 통계를 들이대고, 교과서를 들이대고, 경험과 학력을 들이댄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모든 것이 소용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병원에서 꼬박꼬박 산전 진찰을 받긴 해도 한 사람의 깊은 속내와, 더 깊은 몸의 상흔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원인을 안다 해도 무릅쓰고 아기는 태어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산과 의사나 조산사 처럼 불쌍한 직업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뿐이다. 좋은 마음으로 나의 경험을 나누고 행하기를 기도한다. 세상의 단 하나뿐인 존재를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조산사는 많은 시간을 산모의 마음을 읽는데 쓴다. 이야기하면서 편치 않은 마음이 차오를 땐 의사에게 가보라고 한다. 어찌 보면 피할 구석이라도 있는 조산사가 의사보다는 덜 불쌍한 셈이다. 의사가 되지 못한것이 더 행복하다 느껴질 때가 많다. 어쨌거나 한 인간의 탄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녀가 그 먼 길을 달려와 나보고 셋째를 받아달라는 것에는 꽤나 비밀스러운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비밀은 없다. 그냥 내가 좋다고 했다. 좋다는 것처럼 싱거운 말이 없지만 반대로 좋다는 것처럼 중후한 것 또한 없다. 좋다고 하는 산모의 생각에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것 또한 우습다. 그녀가 가진 소망 하나면 내가 아기를 받아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것이다. 산모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거다. 결과가 어떻던 나는 최선을 다해 아기를 받아야 하고 거기엔 남을 탓할 이유도 핑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바람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망은 이루어진다. 모든 결과를 확고히 하는 데는 산모의 마음가짐도 한몫을 한다. 그녀는 나와 아기 낳기를 원했다.
황홀한 출산이라면 더 할 나위없다. 모든 가족이 동의했다. 남편은 진통이 시작된 아내를 내게 데려다준다. 모두의 바람대로 산모와 태어난 아기, 두 사람이 건강하다. 그러면 된 거다.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여긴 그들은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출발을 알려왔다. 그러나 오는 도중 진통이 거의 사라졌다. 다행히도 중간 기착점인 보령에 지인이 있었다. 아무 때라도 반겨줄 수 있는 사이가 있다는 것은 지금을 잘 살고 있는 사람임을 반증한다. 나는 대 찬성을 했다. 진통이 제대로 올 때까지 그곳서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은 건강한 나무 집에서 신선한 음식을 대접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아기도 서둘지 않고 서서히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슬이 여전히 나오는 것을 보면 저녁쯤에서야 본 진통이 올 것 같았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느긋이 와도 되련만 그들은 또다시 다음날 아침일찍 , 길 위에 올랐다.
그녀에게는 얄궂은 것들이 있었다.
자궁의 모양이 다른 이들과 달라
엄마의 마음은 더욱 조바심이 나는데 나도 그랬다. 기나긴 길 위가 걱정스럽고,
돌봐야 하는 것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것도 애처롭다. 갓난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떨까.
그러나 지금 나열한 것들은 우선이 아니었다.
내 아기를 받아줄 사람에게 가서 아기를 낳는 것. 그것이 목표고 과정이고 그녀가 원하는 바다. 얄궂은 것들은 당장 꺼낼 필요가 없다.
온 가족을 만났다. 진통은 오는데 엄마는 웃는다. 아직 먼 게야. 어떻게 진통이 오는데 웃을 수 있어. 산모는 진통을 하고 있지만 네 시간이 지나가자 아이들이 답답해한다. 생각보다 진행은 더디다. 얄궂은 것들이 떠올랐다.
시원한 공기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걷는 운동도 할 겸 온 가족을 밖으로 내보냈다. 놀이터도 가고 오랜만에 외식도 하시라 했다. 가족은 찬바람 맞서며 목도리를 두르고 밖으로 나갔다. 눈발이 날렸다. 공기도 아침보다 차갑게 느껴졌지만 오싹하는 엄마의 기운으로 아기가 정신을 차릴 것을 바랐다. 낯선 도시로 온 아기는 세상구경을 하고 싶을까? 알뜰한 그녀는 도시락을 챙겼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도시의 쇼핑몰을 네시간 동안 걸었다.
그러나 구경이 끝나고, 해가 지고 밤이 와도,
아기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깜깜한 밤에 눈이 나린다. 펑펑 나린다.
대설 주의보가 발령되었다. 눈을 좋아하는 녀석일까? 돌아갈 눈 길도 걱정이지만 최우선은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다.
문득, 꿈쩍 안 하는 아기를 보면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탄생의 표식인 이슬이 나온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오려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탄생의 시간은 언제일까
또다시 나의 경험의 헛됨을 깨달으며 하염없이 온 세상에 나부끼는 눈을 바라보았다. 촛침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진통을 하는 산모를 두고 딴짓을 할 수가 없다. 책도 읽고, 남겨진 일도 하면 좋으련만.
심지어는 목구멍으로 밥조차 들어가질 않아 애꿎게 여러 종류의 차만 우려진다. 조산사의 일은 이렇게 하염없다.
밤이 깊어지자 재잘거리던 두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인생의 대 서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 그 이치를 믿어볼까.
사랑도, 탄생도, 죽음조차도 밤을 좋아한다.
그래, 믿어보자.
산모를 걷게 하려고 작은 조산원 방에 길을 냈다. 큰 방을 지나 거실로, 거실을 지나 작은방 복도로. 뱅글뱅글 씩씩하게, 걷는 길 위로 두 군데에 발판 장애물도 놓았다.
오르락내리락 하면 골반의 움직임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아기를 품은 만삭의 산모가 오가며 행군을 한다. 남편의 구령이 부쳐졌다."하나, 둘, 하나, 둘! 옳지 잘한다. 내가 그렇게 걸으라고 해도 걷지 않더구먼 선생님 말은 정말 잘 듣네. 발뒤꿈치를 정확히 바닥에 대고 또박또박 팔 흔들며 걸으시오! 아내!"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어슬렁거린 쇼핑센터에서의 운동은 운동이 아니었다며 한바탕 웃고,
남편과 나는 갖은 칭찬으로 그녀를 북돋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오늘 내내 지지부진했던 자궁수축이 2분, 3분 간격으로 온다. 하트 모양을 한 자궁은 뜸을 들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나 보다.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
다시 한번 아기 받을 준비를 확인했다. 옆으로 누워서 아기를 낳는 것이 무리가 가지 않고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왼쪽으로 누워 땅콩볼을 껴안고 남편은 간간이 아내의 손을 잡아 주면 좋을것이다.
진찰을 했다. 자궁문이 거의다 열리고 아기는 1센티 더 내려와 있다. 내진을 하면서 양막이 열렸다. 아기를 품고있던 양수는 말갰다. 건강하다는 또다른 증거다.
중간 골반을 통과한 아기 머리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지 이따금씩 센 진통이 올때마다 쑥쑥 내려온다.
온 기운이 출산에 쏟아지자 산모는 발이 시리다고 했다. 핫팩을 대주고 이불도 덮었다.
드디어 아기의 머리가 손가락 두 마디 안까지 내려왔다. 약 다섯 번 정도 진통이 오면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기운을 북돋았다.
아기의 까만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주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한 산모는 천하장사처럼 힘을 준다. 신이 내려준 힘으로 여자는 딴 사람이 된다. 나는 회음열상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조금씩,
아기 머리가 밖으로 나왔다.
탯줄도 목에 감겨져 있지 않다.
2.69킬로의 인형 같은 아기가 탯줄을 매단 채 엄마의 가슴에 안겼다. 열상도 없다. 태반도 십분후 오롯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왔다. 이쁜녀석이 가족에게 왔다.
언제 진통을 했냐는 듯 환하게 웃는 엄마품에 안겼다. " 황홀한 출산을 했네!" 가슴에 아기를 안고 웃는 아내를보며 남편도 웃는다.
자고 있던 큰 딸이 옆방에서 산실로 들어왔다. 뒤이어 작은 녀석도 들어왔다. 이 묘한 기운을 느끼고 온 녀석들도 기특하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다가 조심스레 아기의 손을 만져보고 작은 발도, 탯줄도 만져본다. 아기가 태어나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태반의 기운도 느낀다.
모두가 눈이 동그래졌다.
"황홀하셨나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웃는다.
이 정도면 황홀한 것이리라.
새벽 두 시. 함박눈이 조용히 온 천지를 덮고 있다. 이제는 그 다음 걱정을 해도 된다. 눈이 오더라도 가는길은 깨끗이 치워져 있기를 바란다며 작은 기도를 한다. 조산사는 늘 기도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다섯 식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