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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은 레깅스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상

by 김옥진 Jan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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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도 레깅스처럼 해지는지 작년 늦가을부터 두 달 동안 기침감기를 앓았다. 감기를 앓는 것은 내 평생 동안 손을 꼽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이제 내 몸을 돌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일까. 약을 먹으면 금세 회복이 되던 과거와는 달리 오랜 기간 낫질 않았다. 이 약 저 약을 먹어가며 몸을 달랬으나 낫는듯하다가도 다시 심해지곤 했다. 낡는 것은 사물뿐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지만 맞닥뜨린 실제 상황에 당혹감이 몰려왔다. 마음이 급해지자 온갖 비타민을 찾아먹고 충분히 잠을 자기도 했다. 비실비실 오랫동안 앓는 것보다 열이 펄펄 나거나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호되게 감기를 앓고 며칠 내로 툭툭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정말 큰 병이 든 건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죽으면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몰려왔다.

결국, 병원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 두 번씩이나 영양제를 맞았다. 어느 처방에 몸이 회복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달 후 감기는 내게서 떠나갔다. 나름 스스로를 씩씩하다고 여기고 산 내가 병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다니. 이번 감기로 '가늘고 길게 보다 짧고 굵게 살자' 하던 나의 인생 모토가 마구 흔들려버렸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마음은 '짧고 굵게'

에 쏠리는 건 무슨 이유일까.


오십에 앓는다는 오십견을 육십에 앓았다.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그냥 두면 낫는다고 해서 딱히 병원에 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니 사람들 말처럼 저절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3년 후 오른쪽 어깨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또다시 그럭저럭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야무진 생각을 하며 오 개월을 보냈다. 그런데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열중쉬어'가 안되고 어떤 각도로 팔을 들면 약 5초간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더니 회전근개파열이 의심된다고 했다. 우리 몸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한 유일한 관절인 어깨관절은 네 가지  힘줄로 붙어 있는데 이것을 회전근개라고 하며 다친 경험이 없어도 파열될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만 하고, 최근에 어깨를 다칠 일도 없었던 내가, 회전근개 파열일 확률이 높다는 소리를 들으니 의아했다. 게다가 MRI를 찍어야 더 명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나. 작지 않은 금액을 내고 MRI를 찍어야 할까? 몇 달 더 기다려볼까? 외래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병원 리플릿이 눈에 띄었다. 머릿속을 정리하려  할 때 무심히 무언가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중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퇴행성 질환의 경우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안 아프게, 완전하게 낫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나이 든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명료한 설명이었다. 퇴행성이라! 진시황도 막지 못한 노화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결국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하고 약 처방전만 받아 들고 병원 문을 나섰다.

14일 치의 약 봉투가 두 손으로 잡을 만큼 불룩하다. 집으로 돌아와 약을 꺼내드니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주셨던 줄줄이 사탕이 떠올랐다. 오렌지 맛 포도맛 레몬맛 등등이 들어 있는 알록달록한 줄줄이 사탕은 보기만 해도 하늘을 나는 새처럼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아껴 먹느라 하루에 단 한 봉지씩만 꺼내 먹었다. 줄어드는 길이가 애석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먹을 것이라고는 사탕 대신 형형색색의 캡슐 약뿐이니 내참!


"그만큼 쓰셨으니 이제 그러려니 하셔야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면 의사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지! 이 나이 먹도록 썼으니 고장 나는 건 당연하지,  암, 그렇고말고." 씁쓸한 미소를 띠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통증을 알 길 없었던 나는 결국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고, 아프고 나서야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더 깊이 어머니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나 자신이 참 송구할 뿐이다. 내 딸들도 나처럼 별 수 없을 것이니 어머니처럼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화도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자꾸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도 이제는 좀 줄여야지. 레깅스도 결국엔 해지는데 나라고 별날까.

레깅스 구멍을 꼼꼼하게 바느질해서 메꾸고 나니, 애착 레깅스가 꽤 멀쩡해 보인다. 아직은 쓸만하지 않냐고 빙긋이 웃으며 말을 거는 것 같다. 이깟 오십견쯤은 이겨낼 수 있다. 아직은 나도 레깅스처럼 쓸만하다.

그저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지내기로 한다. 더하여 아직 다리 성성할 때 바빠서 못 본 세상구경을 다녀 보리라고 작정하며 편안한 애착 레깅스를 여행 동반자로 발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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