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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홀 5.  성난바다

보홀이야기

by 김옥진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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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드는 내일 호핑투어 떠나기 전에 무조건 멀미약을 먹으라고 했다. 배 멀미를 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고집스레 멀미약 먹을 것을 강조했다. 각자 알아서 약을 구비하라고도 했다. 약 이름은 보나민이며 가격, 약국의 장소까지 친절한 듯 알려주었으나 사실 6명밖에 되지 않은 팀에게 멀미약을 사 주었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도 그런 의견을 내지 않은 덕에 필리핀 현지 약국을 방문해야만 했다.


 약국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열개를 주길래 네 개만 사도 되냐 물었고 점원은 흔쾌히 동의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서로는 그저 눈빛언어 80%로 서로를 이해했다. 끝나는 언어는 몸짓언어, '엄지 척'과 '미소'이다. 약은 0.5 밀리직경의 살색의 알약이었다. 친구들은 필리핀의 약국이 신기한 듯 매장을 둘러보았는데 진짜 약들은 조제실에 있었고 진열대엔 외용 약품이나 손 소독제, 티슈등이 진열되어 있었. 돌아오며 북적이는 밤시장도 구경했다. 바비큐 냄새와 매연냄새가 섞여 매캐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필리핀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기대하고 갔던 열대과일 파티는 수박과 파인애플만 차려진 조식 뷔페로 실망감이 더해갔다. 저만치 과일가게가 눈에 띄었다. 망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고 싶은 맘을 간신히 달랬다. 사실 여행특전에 숙소당 2킬로의 망고를 준다 했으니 오늘 밤을 기대해 볼까나. 모두 합하면 4킬로로 적지 않은 양인데 다 먹을 수 있을까, 숙성된 망고여야 당장 먹을 수 있을 텐데라는 소소한 걱정을 한다. 일단 가이드의 연륜을 믿어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기대한 데로 흰 비닐봉지에 망고가 한가득 배달되어 있다. 여자 셋은 신나 소리를 질러댔다. 껍질에 듬성듬성 밤색 점이 있는 걸 보니 숙성도 잘 된 망고임에 틀림없다. 망고 욕심이 끝없이 부풀어져 더 사달라는 부탁을 해보자는 의견에 서로 맞장구를 쳤다. 먹어보지도 않고 그저 욕심이 앞선다. 저런! 그런데 과일을 자를 칼이 없다! 호텔서 빌려보려 했지만 규정상 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해외만 나갔다 하면 마징가 제트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곤 하는 나의 구원자, 남편은 먼 길을 돌아 돌아 과도를 사들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돌아왔다. 칼을 반기는 여자 셋은 일인당 세 개씩 망고를 해 치운 후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흡족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망고! 망고! 망고! 망고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홀여행을 했을 때는 구름 한 점 없는 열대의 날씨를 만끽했었다. 10분만 바다를 누벼도 팔다리가 소시지처럼 빨갛게 타곤 했다. 다리엔 바지자국이 몇 달 동안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름과 간간이 비가 오고 있는 이번 여행에서는 까맣게 그을 일 일은 없을듯하다.

호텔조식을 먹고 나서 세 사람은 내가 주는 멀미약을 줄 서서 받아먹었다.


 호핑투어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바다로 나갔다. 일기예보데로 찌뿌둥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파도가 심상치 않게 출렁인다. 쪽배에서 조금 더 큰 배로 옮겨 타는데 배가 심하게 춤을 춘다. 필리핀 직원들은 노련하게 우리들을 도왔는데 이깟 파도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입가엔 웃음이 가득했다. 멀미약을 꼭 먹으라고 했던 가이드는 파도가 높을 거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괜스레 여행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평상시보다 조금 더 파도가 높아도 우리는 어차피 바다로 나가야 관광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액티비티가 주된 관광상품으로 차려진 보홀여행에서 호핑투어를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까.


 까마득 멀리 섬이 보인다. 발라카삭 섬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40분이 족히 걸렸다. 파도에 부딪히는 방카(Bangka:필리핀의 전통배)도 힘이든지 엔진에서 된소리가 났다. 좌석에까지 물도 튀어 들어 올 정도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가이드가 강요하다시피 한 멀미약이 효과를 볼까. 아직 우리 팀들은 멀쩡해 보였다. 아뿔싸! 올 것이 왔다. 그것도 제대로. 우리 팀에 합류했던 부부 중 아내가 뱃멀미로 쓰러졌다. 먹고 온 멀미약마저 토해버리고는 배 바닥에 널브러졌다. 남편환갑을 맞아 자식들이 보내준 여행이라며 행복해하던 부부였다. 맥없이 쓰러진 아내를 주무르고 닦아주는 남편은 아내를 두고 호핑투어를 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몰려왔다.


 어디를 가나 아픈 사람을 보면 일선에 나서는 우리들 간호사 셋은 남편을 제치고 그녀 곁으로 가서 지압을 하고 주무르며 멀미가 덜해지기를 바랐다. 우리의 보살핌에도 그녀는 뱃전으로 아침을 다 바다에 내놓고 또다시 바닥에 누웠다. 그러는 사이 뱃전에 사람들은 출렁이는 파도를 헤치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바다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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