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입맛 없는 아침이지만 조금이라도 밥을 먹여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아홉 시를 향하고 딸의 출근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며칠 전 돼지고기 고추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세뇌를 당한 것처럼 길을 나설 때마다 찌개거리를 사들고 온다. 며칠 전 사다 썰어놓은 안심을 꺼낸다. 전자레인지에 녹여야 할 정도로 얼어있다. 그러나 전자레인지로 녹이고 싶진 않다. 쌀을 씻을 동안만이라도 녹으라고 공기 중에 놓았다. 쌀을 빨리 씻어야 한다는 마음과 고기가 녹는 시간 사이 갈등이 비집고 들어온다. 후자에 마음이 간다. 평상시보다 더 느긋이 쌀을 씻는다. 수돗물로 씻은 첫물은 버리고 나머지는 정수기에서 나온 물을 사용한다. 정수기 물은 수도 물탱크에서 나온 물보다 정갈할 테니까. 어릴 적 마시던 우물물 맛과 비교될 순 없겠으나 지금 나의 최선은 정수기 물을 쓰는 것이다. 기계에서 나온 물 두 컵을 붓고 뽀얀 물이 더 뽀얗게 되도록 박박 씻는다. 쌀가루에 묻은 전분이 찌개 맛을 더 맛있게 한다고 배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는 갖가지 소리와 냄새로 기억된다. 그것들은 내 몸 깊숙이 박혀 신기하게도 필요할 때마다 꺼내진다. '찌개를 끓일 때는 쌀뜨물로 해야 감칠맛이 더해진단다' 어머니는 흙바닥 부엌에 서서 내가 듣거나 말거나 염불 외듯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끓여 주신 돼지고기 고추장찌개는 그렇게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어머니와 비슷하게 찌개를 끓인다. 시골서 공수된 애호박과 수미감자, 마늘과 고추장 큰 술 하나, 시장서 사 온 양파를 넣고 불을 올린다. 조금 꾸덕꾸덕하게 녹은 살코기도 뜨거운 국물에 넣는다. 찌개거리들이 익어갈 무렵 마지막으로 시장표 두부를 넣는다. 온 집안에 찌개 냄새가 가득하다. 침이 고이며 입맛이 다셔진다. 요즘에는 혓바닥 돌기도 늙었는지 맛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 오랜만에 끓인 고추장찌개에서 구수한 어머니 냄새가 난다. 입맛이 돈다.
"웬일이래, 아직도 안 일어나고! 밥 먹자, 네가 좋아하는 고추장찌개 끓였어. 입맛 없더라도 조금만 뜨고 가." 딸을 깨운다. 눈을 비비며 딸이 말한다.
"어? 엄마! 오늘 일요일이에요"
"일요일이었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
"엄마가 치매가 오나 보다." 딸 방에서 돌아 걸어 나오는 발걸음이 나무늘보 같다.
늦잠이나 더 잘걸! 괜스레 손해를 본 것 같다. 너무나 명료해진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 고추장찌개 냄새 그득한 일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