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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정 Oct 12. 2023

까미노, 그 후의 이야기 2

Camino magic in Valencia

  산티아고에 다녀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엄마를 모시고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순례길을 다시 걷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페인에 가기로 한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두 번째 까미노는 시작되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를 가지만 그 어느 도시보다 나를 강하게 이끈 도시는 바로 발렌시아였다.      


  장거리 비행도 유럽 여행도 처음인 엄마를 모시고 발렌시아까지 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스페인의 그 어떤 유명한 관광 명소를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경험을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래서 딸만 믿으라며 무작정 엄마 손을 잡아끌었다. 그곳까지 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에 바로, 보고 싶은 나의 까미노 친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800km를 30일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해야만 꼭 의미 있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 기적 같은 순간들을 엄마와 나눌 수 있다면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아빠와 함께 걸었던 길을 추억하며, 나의 두 번째 까미노는 엄마와 함께 걷고 싶었다. 허전한 엄마의 손을 든든한 딸이 다시 꼭 잡고 씩씩하게 걷고 싶었다.     


  나의 그 간절한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발렌시아에서 꽤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나를 보겠다고 한걸음에 달려 나와 주었다. 드디어 발렌시아 어느 광장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신기한 건 그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반가운 마음에 광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부둥켜안고 뛰면서도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만 흐르고 또 흘렀다.        

  그냥. 다. 정말 고마웠던 것 같다.     

  우리가 함께한 인연이. 

  그리고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그들의 마음이.      


  먼저 크리스티나 가족을 만나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크리스티나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이번 학예회에 아이들과 함께 강남스타일을 추었다며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순례길을 걸을 때 중2였던 동생 마리아는 그새 커서 성숙한 아가씨가 다 되어있었다. (한창 외모 침체기일 나이에 역변이란 없었다.)      

  최근에 연락한 크리스티나는 3개월 후 새 신부가 된다고 했다. 세상 둘도 없는 딸바보 크리스티나 아빠가 결혼식장에서 얼마나 울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내가 건넨 엽서 한 장에도 웃던 그들은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기념품에도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 먼 곳까지 찾아간 이유를. 나는 그 웃음이 다시 한번 보고 싶어 그곳까지 간 것이었다. 



  한편 베로니카와 나초는 유모차에 그들의 주니어인 마태오를 태우고 나왔다! 맙소사! 이 생명체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얼마나 작고 귀엽던지! 올리브색 눈동자와 앙증맞은 발까지.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불과 2년 전 내 기억 속 그들은 알베르게에서 함께 수다 떨고 바르에서 병나발 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어느덧 엄마, 아빠가 되어 살뜰하게 아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트래킹 용품이 있던 그들의 가방은 어느덧 아기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해 아기를 어르고 달래고 먹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베로니카는 산티아고에 도착해 함께 열심히 ‘빠따따~~’를 외치며 찍은 우리들의 사진을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왔다. 그와 함께 귀여운 마태오의 사진으로 만든 마그넷도 함께 선물해주었다.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베로니카 언니! 나초가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를 다시 한번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수다스러움과 약간의 푼수끼 마저 그녀를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사리아의 그날 밤으로 돌아간 듯이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전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때 나는 스페인어를 꼭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남미 여행 이후 한동안 놓았던 스페인어 공부를 1년 전 다시 시작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 언젠가 베로니카와 스페인어로 실컷 수다 떨 날을 기대하며!     


  최근 연락한 베로니카는 둘째 마르코의 소식까지 전해왔다. 유모차를 타던 마태오가 벌써 8살 듬직한 형이 되었다니!!! 사진을 보니 훈남이었던 나초의 얼굴도 많이 삭아 보였다. 육아가 힘든 건 동서양 매한가지구나. 다행히 베로니카는 여전히 밝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베로니카 기억 속 나는 그저 와인으로 수혈하면서 할머니들보다 느리게 걷던 순례자일 것이다. 그런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을 보면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는 마태오와 마르코,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 날도 왔으면 좋겠다. 그곳이 한국이든 스페인이든 좋다! 물론 산티아고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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