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씨의 영어해방일지 (2)
오늘은 원서 읽기 모임이 있는 첫째 날. 도서로는 로빈 월 키머러 교수의 <향모를 땋으며>가 선정되었다. 그러나 딱 일주일 전 이 시간, 나는 리더 선생님께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이 좋은 책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우리말도 어렵고, 영어는 더욱 못 알아듣겠는 터. 모임에 참여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따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과 책상 위의 책들도 '나 좀 읽어줘'하는 것만 같았다. 즉, <향모를 땋으며>가 읽기 싫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물러날 작정을 하고 내 레벨을 운운하며 메시지를 드렸다. 그러나...
"안 하면 내년에도 안 해요."
이 한마디가 내 가슴에 콕 박혔다. 영어로 무언가를 해본다 하고 진득하니 해본 적이 없는 나. 전에 선생님께 영어그림책 수업을 들으면서도 3주만 듣고 육아를 핑계로 후퇴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만했던 게 둘째가 돌도 안 된 나이였으니, 내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며 살았는가.
내년부터 일을 시작하면 올해만큼 많은 양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거였다. 해볼 거면 올해가 기회인 게 맞았다. 벽돌책이라 부담은 느끼지만, 이 책을 마치고 나면 해냈다는 뿌듯함이 주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도전하겠다고 답을 드렸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될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에서 보내는 일주일은 긴장의 나날이었다.
번역판을 끝까지 다 읽고 원서로 재독 하며 따라가는 수업을 꿈꿨으나 현실은 겨우 한글판을 읽고, 밑줄 친 문장을 원서에서 찾아 그 문장과 문단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서가 아주 깨끗..^^;) 그럼에도 정말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글쓰기가 아닌 영어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매우 신선했다. 다른 뇌를 쓰는 것 같은, 죽어있던 세포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줌 수업에 입장! 처음부터 마이크 작동이 안돼 당황스러웠으나 어찌저찌 해결하고 스터디원들을 만났다. 책 읽기와 자연, 영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아름다웠다. 선생님께서 정성으로 만드신 자료를 보고 설명을 들으며 향모와 북미원주민의 배경지식을 갖춰나갔다. 다행히 수업도 한국어로 진행이 되어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ㅎㅎ)
결론은 '이 모임에 참 잘 왔다, 하기로 결심을 잘했다'였다. 나의 지식이 확장되는 게 너무 좋고, 덤으로 영어 실력까지 쌓을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중간중간 던져주시는 선생님의 질문은 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고민하게 했다.
계속해서 의미를 찾아갈 생각에 신이 난다. 이 책이 끝날 무렵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공동의 선을 향해 나아가게 될까 기대가 된다. 두 달 동안 볼 책이지만 두고두고 곁에 두며 읽고 싶은 책인 게 확실하다. 이제야 시작했는데 벌써 다음 재독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