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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Oct 16. 2024

우울했던 하루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요 며칠 기분이 왜 이리 울적한지 마음이 화창하지 못하다. 번아웃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읽는 양도 많지 않으면서 뭘 쓰겠다고 하는지 무능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둘째가 등원할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그 표정을 보면서도 돌아서는 내가 너무 싫다. 아이를 맡겨놓고 가야 할 일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는 것이 잘한 일인가 싶다. 오롯이 내가 아이만 돌본다 해도 마음이 편치 못했을 거면서 내가 한 결정에 확신이 없는 엄마다. 늘 이렇게 흔들린다.


지난 8월 말, 둘째가 장염에 걸리면서 나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의 맛을 알아버렸다. 그 이후로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울어댔다. 9월부터 안 울고 들어간 날이 손에 꼽힐 만큼 내내 울었다. 왜 이렇게 10월엔 징검다리 연휴도 많은지 아이도 울었다 웃었다, 내 마음도 울었다 웃었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기침하는 둘째를 데리고 오늘 아침 소아과로 향했다. 형을 먼저 등원시키고 엄마랑 병원 가는 길이 너무나 행복한 둘째였다. 다행히 상태가 심하지 않아 접종 주사까지 두 대나 맞고 나왔다. 그러나 어린이집이 보이니 다시 소아과로 갈 거라고, 주사를 맞겠다고 할 만큼 아이는 어린이집을 거부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내 눈을 보며 또박또박 "여기 이렇게 있을래"라고 말하는 28개월 아기의 슬픈 표정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른거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모든 걸 포기하는 마음으로 안겨있다가, 내 품에서 떨어질 때 북받쳐 우는 아이의 눈물은 나를 더 죄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얻게 되는 나만의 시간은 한시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밖에서 힘들게 벌어오는 경제적 활동에 미안해서라도 나는 내 시간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니 마음 편하게 영화 한 편을 본 적도, 늘어지게 낮잠을 자본 적도 몇 번 없던 것 같다. 정말 부지런히 달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하고 배움을 찾으며 시스템 안에 나를 가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증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삶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게 되었다. 잘살아보겠다고 애쓰는 인생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다. 나의 계발과 관련된 것들에서 손을 다 놓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만 몰입하기 싫어 나를 찾겠다고 해놓고선, 이제 와 도리어 이 삶이 싫다고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고 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방황하는 내가 싫다. 숨을 고르며 내 삶에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조카에게 줄 아이들 책을 보며 아기 책들을 골라내다 첫째가 좋아했던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봤던 책인데도 또 보겠다고 가져와 내 무릎 위에 톡 앉던 아이를 떠올린다. 말랑말랑한 아이가 품에 쏙 들어와 온기를 전해주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둘째와는 기억나는 책이 없다는 게 참 서글펐다. 아무리 '둘째는 다 그래' 할지 몰라도 요즘 자꾸 둘째가 가슴에 박힌다. 난 도대체 아이들이 하원하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엄마일까. 그놈의 집안일, 집안일, 집안일!!! 집안일 좀 안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지 왜 나는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읽어줄 여유를 못 찾고 있을까.


자꾸 자책만 하게 되는 오늘, 조울증 환자도 아니고 때가 되면 찾아오는 울적함이 원망스럽다. 마음의 공기만큼 비가 내려 무거워진 공기에 허리 통증도 심해진다. 그냥, 이런 날도 있다고 생각하련다. 이렇게라도 글에 버거운 마음을 실어 오늘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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